김학주 한동대 교수
김학주
한동대 교수

역사학자들은 ‘일본’ 이야기만 나와도 예민해진다. 그런데 한국을 대표하는 전자와 자동차 기술을 일본에 머리 숙여 배웠다. 그 고달팠던 과정을 역사학자들은 모를 것이다. 오늘날 삼성전자는 일본업체들을 제쳤다. 현대차의 품질은 도요타에 뒤지지 않게 됐다. 이것이 제대로 된 복수 아닐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 민족은 남들에게 못할 짓 안 했을까? 정도의 차이는 있다고 해도 말이다. 사람은 모두가 그렇게 부족한 존재다. 그 사실을 인정했으면 좋겠다. 역사는 학자가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후손들이 객관적으로 평가해 줄 것이다. 어쩌면 그럴 필요도 없이 ‘민족’이라는 개념이 모호해질지도 모르겠다.

최근 페이스북은 달러와 1:1로 교환할 수 디지털 현금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플랫폼 안에서 온라인 쇼핑을 제도권 화폐로도 할 수 있는데 굳이 자체적인 가상화폐를 쓰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환위험이나 거래수수료 없이 글로벌 고객들이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다. 즉 사업을 세계적 규모로 키우는데 용이하다는 것이다.

둘째, 생태계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즉 플랫폼이 먹이사슬의 가장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체적인 통화 덕분에 많은 소비자들을 모아 빅데이터를 얻을수록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실시간으로 가장 잘 알 수 있으므로 모든 주문이 여기서 생성된다. 지금의 제조업체나 서비스 제공업체들은 그 밑으로 들어가서 주문을 받게 된다. 즉 플랫폼의 시녀가 된다는 것이다.

셋째, 화폐의 가치는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상승한다. 1970년대 금 본위제가 깨진 이후 화폐의 가치를 금으로 완벽히 보증하지 않는다. 달러도 그냥 ‘종이’고 정부가 보증해 편하게 쓸 수 있는 ‘무이자 국채’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인터넷 플랫폼이 커져 디지털현금이 더 많이, 그리고 편하게 사용될수록 그 가상화폐의 가치는 상승할 것이고, 그럴수록 생태계의 매력도가 높아져 더 크게 발전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

넷째, 결제를 위해 돈이 저장돼 있으면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금융 및 투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중국 알리페이는 ‘위어바오’라는 결제대기 자금을 활용한 단기 금융상퓸을 출시했는데, 이 뿐 아니라 플랫폼 생태계 안에 매력적인 스타트업(start-up) 등 괜찮은 투자대상이 많아질수록 본격적인 투자를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 수 있다.

트럼프가 가장 두려워하는 인물은 시진핑이 아니라 아마존의 대표인 제프 베조스(Jeff Bezos)다. 그 생각은 시진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제 먹이사슬의 가장 위에 군림할 인터넷 플랫폼은 속성상 독과점이 불가피하다. 특히 동질화된 서비스로 수렴할 것이므로 거대업체간 M&A의 가능성도 높다. 이렇게 플랫폼이 대형화되면 정부 말을 듣지 않는다. 대항할만한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제도권이 인터넷 플랫폼 업체들을 개인정보 보호 등의 이유로 심하게 규제하며 성장을 방해하고 있지만 민심은 제도권을 떠나고 있다.

제도권의 탑 다운(top down) 방식의 규제는 이미 실망스러운 결과와 함께 한계를 드러냈다. 화폐는 경제의 혈액과 같은 것인데 민간경제를 대표하는 플랫폼이 자체적인 화폐를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는 곳에 보내어 경제 구석구석으로 산소를 배달할 수 있다면 플랫폼은 더욱 대형화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세계경제는 몇 개의 유력한 플랫폼 생태계로 구분될 것이다. 그리고 환율이란 그 생태계들의 자체적인 화폐 가치의 경쟁비율을 의미할 것 같다. 국가란 함께 오래 살아 온 사람들의 관습과 문화, 질서를 정의하는 조직 정도로만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이렇게 진화하고 있는데 포퓰리즘에 빠져있는 세계 정치인들이나 민족에 집착하는 역사학자들의 주장은 순진한 푸념처럼 들린다. 우리는 지구 이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