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고대 소아시아의 프리지아라는 도시국가에는 왕이 없었는데, 이륜마차를 타고 오는 첫 번째 사람이 왕이 될 거라는 신탁이 있었다. 어느 날 농부의 아들이었던 고르디우스가 이륜마차를 타고 나타나자 사람들은 그가 바로 신탁이 말하는 사람이라고 믿고 왕으로 추대했다. 왕이 된 고르디우스는 자신이 타고 온 마차를 신전에 바치고 복잡하게 매듭을 지어 신전기둥에 묶어두었다. 그것을 본 사제가 신탁을 받아,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 전역을 통치하는 지배자가 되리라”고 예언을 했다. 나중에 알렉산더 대왕이 아시아 원정길에 그곳을 지나다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에 관한 얘기를 듣고는 자신이 풀어보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단칼에 매듭을 베어버렸다. 중국에도 이와 비슷한 고사가 있다. 남북조(南北朝)시대 북제(北齊)의 창시자 고환(高歡)은 아들을 여럿 두고 있었는데, 이 아들들의 재주를 시험해 보고자 한 자리에 불러서 뒤얽힌 삼실 한 뭉치씩을 나눠주고 풀어보라고 하였다. 다른 아들들은 모두 엉킨 실타래를 풀어보려고 진땀을 흘리고 있는데, 양(洋)이라는 아들은 잘 드는 칼 한 자루를 들고 와서는 헝클어진 삼실을 싹둑 잘라버렸다. 쾌도난마(快刀亂麻)란 고사성어가 생겨난 유래다.

두 이야기가 다 힘의 논리로 문제를 해결한 예가 되겠지만, 한편으로는 발상의 전환을 의미하기도 한다. 엉클어진 실타래를 풀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풀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엉클어지기 마련이어서 더 이상 풀리지 않는 곳에서는 과감하게 잘라버리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세계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북핵문제도 마찬가지다. 그 매듭을 풀어보겠다고 제법 호기롭게 출발한 트럼프와 문제인 정권이 뭔가 실마리를 찾는 듯하더니, 하노이회담 결렬과 최근의 미사일 도발로 다시 원점으로 돌려진 형국이다. 이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된다. 북한의 김정은이 과연 핵을 포기할 것인지, 아니라면 그가 핵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것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우선되지 않고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만약 김정은이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기만 한다면,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가 풀릴 것이고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원조와 지원이 있을 것이다. 거기다가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간다면 머지않아 세계 최빈국의 굴레를 벗어나고 기아에 허덕이는 인민들의 삶은 풍족해질 것이다. 그런데 왜 김정은 한사코 그것을 가로막는가. 그 까닭을 먼저 알고, 그 사실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대화든 협상이든 다 속임수이고 부질없는 짓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북조선 70년 역사는 철저하게 김일성 일족의, 김일성 일족에 의한, 김일성 일족을 위한 역사였다. 유엔에도 가입을 한 국가의 형식을 갖추었다고는 하나 내용상으로는 김일성 일족을 신격화한 사이비종교집단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것을 공고히 하려고 전 인민을 유아기 때부터 철저하고도 집요한 세뇌교육으로 모조리 꼭두각시 맹신도로 만들어 놓았다. 북조선의 인민이란 오로지 당과 수령을 위해 목숨 바쳐 충성하는 것만이 존재 이유가 되는 것이다.

김정은이 죽어도 핵을 포기하지 못하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신격화된 백두혈통의 절대존엄에 대한 회의나 불신은 곧 세습독재체제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동시에 햇빛정책이니 달빛정책이니 하는 우호적인 정책이 먹혀들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핵무기의 폐기는 물론 남북통일 문제도 김정은 체제가 건재하는 한 엉클어진 삼실뭉치요 고르디우스의 매듭일 수밖에 없다. 대화니 타협이니 하는 상식적인 방법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기아에 허덕이는 북녘 동포들을 구하고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김일성 일족의 세습체제를 무너뜨릴 쾌도난마의 해결책은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