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 영화제 감독상을 탔다 하니, 한동안 잃어버렸던 영화열이 되살아나는 것같다.

뭐, 좋은 것 없나? 옛날 옛적에 홍콩 느와르를 좋아했고, 조금 더 돼서는 전쟁영화, 그중에서도 베트남 전쟁 영화 광이었다, 이창동, 박찬욱으로 와 끝이었다. 웬만한 영화는 십 분, 이십 분을 끌어가기 어렵다. 지친 사람의 인내력을 말이다. 얼마 전에는 괜찮다 해서‘극한직업’이라는 걸 봤다가 나는 벌써 완전 가버렸구나 했다.

좋은 걸 좋게 볼 수 없게 됐단 말인가? 그래도 얼마 전에는 ‘프리 솔로’라는 것을 꽤나 진지하게 지켜 봤지 않았던가? 좋은 영화였다. 요즘에 나는 다큐멘터리, 르포 같은 것, 사실적인 것이 좋다. 상상력이 메말라서일까? 꿈꾸는 법을 잃어버린 걸까? 아, 나는 지난 몇 년 간 진흙탕 속에서, 악몽 속에서, 어둠 속에서 살았댔다.

무슨 영화를 봐야 하나? 볼 수 있는 게 있을까? 이리저리 괜찮을 것 같은 작품을 좀처럼 스톱을 걸 수 없다. 스릴, 추리를 좋아하기도 하건만 이조차도 시간을 따라 흐르기가 쉽지 않다.

스탈린의 죽음? 코미디라고? ‘Death of Stalin’이라는데 어떻게 코미디?

이 독재자가 1953년에 세상 떠난 것은 안다. 참 지독한 인간이었다 했다. 원래 근엄한 인간, 절대를 추구하는 인간들은 위험천만 일쑤다. 도덕주의자처럼 남을 잘 해하는 족속들도 없다.

결코 간단한 코미디는 아니었다.

스탈린은 어느 날 밤 심장마비, 아니 뇌출혈로 세상을 하직했다. 한 인간만 없어져 주면 세상은 개벽처럼 달라지는 것이건만.

스탈린 다음엔 후루쇼프였고, 그래서 잠시 해빙기가 왔었는데, 경위는 전연 알지 못하던 나다. 영화에 베리야라고, 내무장관인지 비밀경찰총수인지가 등장하고 몰로토프니, 주코프니, 후루쇼프니, 스탈린의 아들이며 딸들이 등장한다. 스탈린의 뒷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최고 위원회에서 다수파가 되어야 한다. 베리야의 비밀 동원력이 장례 준비까지는 힘을 발휘한다. 스탈린이 살았을 때 그는 피비린내 나는 숙청, 살육극과 감금, 강제노동의 화신이었다. 주코프는 2차대전의 영웅, 그가 후루쇼프를 도와 스탈린의 장례 기간을 틈타 전세를 역전시킨다. 모스크바로 몰려든 군중들에 대한 학살 책임을 베리야에게 돌려 수뇌부들의 심리를 바꿔놓는데 성공한 것이다. 사실, 당시 공산당 지도부들은 스탈린 체제 하에서 저질러온 온갖 악행들에 대해 책임을 물릴 자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높은 데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베리야가 적격이었을 것이다.

이 며칠 동안의 드라마를 보며 깨달은 것 하나. 술수와 속임수로 권력을 수중에 넣으려는 집요함과 야비함은 어느 사회나 다를 바 없다는 것. 무장이라도 그 실력으로 술수를 성공으로 밀어부칠 만하면 안 그러는 세력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음모를 모른 채 권력을믿고 따르고 움직이는 민중들은 늘 착한, 어리석은 사람들로 영문도 모르고 왔다 간다.

앗. 이런 시각은, 나는 한번도 수긍한 바 없건만. 난제, 난제라 아니할 수 없다. 어떻게 이 술수 앞의 무기력에서 빠져나갈 수 있나.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