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같은 시대, 같은 아픔을 겪었다면, 그리고 민주화의 열망을 함께 품고 살아왔다면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2019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대통령 연설의 한 대목이다. 북한군 특수부대가 광주에 침투했다는 말부터 “종북좌파들이 5·18유공자라는 괴물집단을 만들어내 세금을 축내고 있다”며 사실을 왜곡하고 희생자를 모독하는 발언이 쏟아지는 가운데,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반쪽짜리 기념식을 본 듯해 씁쓸하다”고 했다. 1980년 5·18 광주를 떠올리며 드는 생각, 39년의 세월동안 우리 사회는 얼마만큼 성숙해졌을까?

1980년 광주는 고립무원이었다. 당시 광주는 철저하게 외부와 차단되고 봉쇄되었다. 유언비어가 난무했고 언론은 침묵했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공수부대의 곤봉에 의해 거리에서 죽고 다치고 행방불명이 되었다. 계엄군에 의해 인권이 유린되었던 5월 광주의 진상은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국회 차원의 5·18 진상규명위원회는 출범조차 못했다. 39년이 시간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는 것은 일부 정치인의 빈약한 역사의식에도 기인한다.

“5·18문제 만큼은 우파가 절대 물러서면 안된다”고 자유한국당 당대표로 나섰던 이는 말한다. 극우 보수층 지지를 위해 당리당략적으로 광주에 접근한다. 호남이라는 지역과 종북좌파 프레임을 엮어 광주의 진실을 왜곡하며 선동한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던 시위와 투쟁을 ‘군화발로’ 짓밟으며 ‘광주사태’로 불렀던 군부정권을 지나 1997년 법정기념일로 지정되고 ‘5·18민주화운동’으로 불려지지만, 2019년 가짜뉴스와 망언들이 난무한다. 그런 점에서 40주년이 되는 내년이 아니라 올해 기념식에 참석하여 “5·18의 진실은 보수, 진보로 나뉠 수 없다”고 천명한 대통령의 메시지는 의미가 깊다.

제러미 리프킨은 “공감은 사람들을 진정으로 평등한 위치에 올려놓는 유일한 인간적 표현”이라고 하였다. “한 사람의 존재가 다른 사람과 감정적으로 같은 지평 위에 있지 않으면 진정한 공감은 불가능하다. 공감은 같은 영혼이라는 공동의식이며, 그것은 사회적 신분의 구별을 초월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영화 ‘택시운전사’만 보더라도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만 읽더라도, 1980년 광주에서 스러진 망월동의 비명만 봐도, 아픔을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5·18 광주라는 공간의 역사를 가벼운 말로는 다할 수 없다.

내년이면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이 된다. 40세의 성숙한 중년처럼 자신의 삶과 세상에 대한 책임감 있는 자세로, 우리가 만들어온 역사와 만들어가야 할 미래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시간에 따라 저절로 익어가지 않는다. 성찰하고 반성하며 올바른 선택과 행동을 하면서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것이다. “성공과 성장 사이, 사람의 그릇을 키울 수 있는 삶의 무기는 무엇인가?” 존 헤네시는 ‘어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를 통해 우리에게 역설한다. 타인과 공동체 문제에 진정성을 갖고 고민하고 머리와 가슴이 함께 하는 공감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하는 국회의원들이 우리 사회 리더로 불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겸손과 진정성, 공감적 감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소년이 온다’에서 한강은 빛고을 5·18 광주항쟁의 의미를 우리에게 생각해 보도록 이끈다. 광주에서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의 입을 빌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말한다. 광주 시민들이 온 몸으로 지키고자 했던 가치는 39주년 기념사에서 대통령께서 강조했던 ‘자유’와 ‘민주주의’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이정표 역할을 했던 5·18 광주가 정략적 의도에 의해 더 이상 폄훼돼서는 안된다.‘공감’이 더욱 아쉬운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