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룡 서예가
강희룡 서예가

조선후기 문신이며 학자인 윤기(1741∼1826) 선생은 그의 저서 ‘무명자집, 잡기’에 인간행위의 욕망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인간 행위의 근본은 욕망이다.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그 마음에서부터 인간사회의 모든 관계와 행동이 시작된다. 욕망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다만 나의 욕망과 남의 욕망이 상충하는 관계망 속에서 나의 욕망이 타인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 긍정적으로 발현되느냐가 중요한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욕망의 기본은 갈구(渴求)다. 이 갈구가 실제와 분수를 앞서 나가다보면 사람은 마침내 자신을 자신이 아닌 무언가로 꾸미고 포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실제와 분수는 다 잊어버리고 목표를 향한 폭주의 바퀴를 굴린다는 것이다.

윤기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열거했다. 사람들은 질박한 태도를 잘 지켜내지 못하면서 자신은 질박한 사람이라 말하면서 행여 교묘한 사람으로 취급받을까 두려워한다. 또한 검소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검소한 사람이라 말하며, 행여 사치한 사람으로 취급받을까 두려워한다. 청렴하지 못하면서 탐욕스러운 사람으로 취급받을까 두려워한다. 정직하지 못하면서 정직하다 말하고는 거짓된 사람으로 취급받을까 두려워한다. 각박한 사람은 자기가 후하다 말하고, 사기 치는 사람은 자기가 진실하다고 말하고, 폭력적인 사람은 자기가 인자하다 말하고, 교만방자한 사람은 자기가 공손하다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를 훤히 꿰뚫어볼라치면 또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열거된 이러한 성격의 소유자들은 모두 인간 내면에 원초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성격의 인간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들 중에서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인간형이 가장 많이 존재하는 집단은 역시 정치집단일 것이다. 자신의 영욕과 명예의 허상을 얻기 위해 가식을 꾸미고 과장하다가 마침내는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며 남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나라를 운영한다는 사람들로부터 노동을 하는 이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이율배반이라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이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제대로 직시하고 자신의 실제를 잘 인지하면서 차곡차곡 내가 바라는 것을 향해 실다움을 쌓아나간다면 이 그물을 피할 수 있을 것인데, 욕망이라는 허상이 앞을 가려 유혹하기 일쑤이니 정신을 제대로 차리고 스스로를 돌아보기가 어려울 것이다.

욕망은 오직 그 실다움을 제대로 획득했을 때에만 우리에게 이로움을 주지만, 자본주위 사회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그 욕망의 늪에서 나오기가 그리 쉽지 않다. 문제는 이 이율배반적인 행태가 일반 개개인들에게서 나타나면 그 피해는 한정적일 수 있으나 정치집단에서 나타나면 국가 전체에 미치는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제왕적 대통령제의 일당독재로 망국(亡國)을 재촉할지도 모른다. 이율배반적인 지금의 우리정치의 상황을 보면, 국민들의 삶에 직결된 민생법안을 신속하게 통과시키기 위해 만든 패스트트랙을 민생법안도 아닌 공수처법과 선거법개정을 패스트트랙에 올려 여당과 야 3당이 위헌(바른미래당의 두 의원 강제 사보임)까지 저지르며 통과시킨 사례이다.

공수처법의 조직은 비리의 온상인 국회의원과 대통령 친인척에 대한 기소권은 없고, 경무관 이상 경찰과 검사 판사 등에 대한 수사와 기소권을 가지는 삼권분립을 무너뜨리는 권력기관이며, 국민들은 지금의 국회의원 수 300석에도 피로감을 느껴 의원 수 증가에 매우 부정적이며 줄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희한한 비례성 강화와 연동형 선거제로 의원 수를 늘리려는 위정자들의 망발과 국민의 눈높이와는 반대로 질주하는 정치권의 꼼수정치는 결국은 망국이나 망권의 지름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