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사회원로들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오찬간담회를 가졌다. 청와대가 원로와의 대화를 앞두고 “국정운영에 대한 조언을 구할 예정”이라고 발표하였던 것처럼, 이번 간담회는 국내외의 어려운 국정현안들에 대한 원로들의 지혜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원로와의 대화’에서 보여준 인식과 태도는 청와대의 간담회 목적을 의심케 한다. 보수와 진보를 가릴 것 없이 대다수 원로들의 고언(苦言)은 매우 중요한 국정현안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통합·적폐청산·소득주도성장·한일관계 등에 집중되었는데, 이에 대한 대통령의 반응과 수용가능성은 매우 부정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국민통합과 관련하여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정치권의 대립과 갈등이 심해지고 그에 따라 국민들 간에 적대감이 높아지는 현상들이 가장 걱정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김우식 전 부총리가 “대통령은 한 계파의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라면서 ‘탕평과 통합’을 강조하였고,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이 “국회가 극한 대결로 치닫는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정국을 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충언(忠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이 웨이(my way)’를 고집하고 있다.

“적폐청산 피로증이 심하다”(윤여준)는 지적에 대해서 대통령은 “살아 움직이는 적폐수사는 정부가 통제할 수 없고 통제해서도 안 된다.”고 답변하였다. 과연 그럴까? 적폐청산을 이유로 검찰과 경찰에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던 사람이 누구인가. 청와대의 지시로 각 부처에 ‘적폐청산TF’가 만들어졌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대통령은 “적폐청산이 이루어진 다음, 그 성찰 위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나가자는 데 대해서 공감이 있다면 협치하고 타협할 수 있다.”고 하니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송호근 포스텍 교수는 소득주도성장정책에 대해서 “이 정책은 효과가 없으니 고용주도성장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였으나 대통령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게다가 송 교수가 지적한 “노조가 이익집단화 됨으로써 촛불민심이 왜곡되었다”는 뼈아픈 지적은 간담회 내용을 소개한 청와대 대변인의 기자발표문에서 제외됨으로써 그 의도를 의심케 하고 있다.

최악의 한일관계에 대해서도 “일본의 국왕이 바뀌었으니 새로운 움직임이 필요하다.”(이종찬 전 국정원장)는 조언에 대해서 대통령은 “일본이 과거 역사에서 비롯된 불행한 문제들(위안부·징용문제)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했다. 한일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일본 못지않게 현 정부도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임을 정말로 모른다는 말인가.

이처럼 원로들의 고언에 대해서 대통령은 변명에 급급하거나 답변을 회피하였으며, 일부 날카로운 충고는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에서 아예 삭제되었다. 이 간담회에 참석한 한 원로는 “대통령이 중요한 문제는 바꾸지 않겠다고 하니 걱정”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수용하지도 않을 원로와의 대화는 무엇 때문에 하였는가? 청와대는 비판적 의견들도 경청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쇼’를 할 필요성이 있었는가?

원로와의 대화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은 상당히 우려된다. 문제는 자신에게 있는데도 자신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말하는 그것이 바로 문제이다. 사회원로들이 고언을 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대통령이며, 그러한 문제들을 반드시 해결해야 할 책임도 대통령에게 있다.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니 부디 원로들의 고언을 국정운영에 잘 반영하여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