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재 포항예총 회장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

요즘은 아침마다 자동차를 뒤덮은 노란 송홧가루를 털어내는 일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송화는 곤충을 이용하여 수분하는 여느 꽃들과는 달리 풍매화인데, 바람이 일 걸 알고 꽃을 피우는지 꽃이 필 걸 알고 바람이 부는지는 모르나 솔 꽃이 한창인 시기에 부는 봄바람은 유별나게 극성스럽다. 이도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한때 ‘금수저’라는 말이 유행했다. 부자 부모를 둔 덕으로 고생하지 않고 풍족하게 잘 먹고 잘 사는 계층을 이르는 말이다. 반대가 ‘흙수저’다. 바삐 사느라 한 번도 스스로 무슨 수저인가를 따져본 적은 없지만, 세간의 기준으로 보면 필자는 분명 흙수저다. 가난하였으나 안분지족하셨던 부모님 모습을 추억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데 새삼 무슨 수저타령이겠는가마는 퇴직을 한 지금까지 노후를 위한 저축이 없으니 내심으로 약간은 걱정이 된다. 그래서 나름 궁리한 것이 전원생활이다. 도심이 지척이니 전원이라 말하기는 좀 민망하지만 어귀에 들어서면 개구리 울음소리가 제법 요란한 산자락 마을이니 전원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여느 사람들처럼 공기 좋은 곳에서 여유롭게 노후를 즐기자는 의미로 선택한 전원생활이 결코 아니다. 집이 없던 시절에도 월세를 내는 작업실은 늘 따로 있었으니 집에 작업실을 두면 절약이 되겠다는 연구 끝에 결행한 것이다. 시골에 주택 겸 작업실을 소박하게 짓고 보니 아파트처럼 관리비를 따로 낼 필요도 없고, 작업실 월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어서 일견 괜찮은 선택인 것같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일 또한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장단점을 제대로 파악하자면 적어도 사계절은 겪어봐야 될 것이다. 이사하고 이제 두 계절을 지났으니 아직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므로 속단하긴 어렵지만, 오래토록 문명의 그늘에서 살던 사람에게 자연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정도는 느낀다. 추운 날 아침이면 출근이 바쁜 시간에 차창에 붙은 성에를 제거해야하는 당혹스런 일도 있고, 거실의 창을 열면 신선한 공기와 함께 불청객인 벌레들도 함께 덤벼들기 일쑤다. 봄철이면 사방에 지천으로 피는 꽃들이 황홀경을 연출하지만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필자는 꽃피는 봄이 괴롭기도 하다. 환경의 변화에는 적응기간이 필요하다.

사람 뿐 아니라 식물들의 몸살도 생각보다 심각하다. 아파트에서 함께 살던 식물들이 자연과 한 발 더 가까워지면서 오히려 시름시름 앓기도 하고, 심지어 때 아니게 잎을 내리더니 죽어버린 화분도 있다. 초임지의 제자가 선물한 작은 화분을 십여 년간 애지중지 키웠는데, 좋은 햇살을 보이려 이삼일 밖에 두었더니 잎을 내리고 시름시름 하여 다시 들여놓고 온갖 정성을 다해도 결국 안타깝게 죽고 말았다. 문명에 길들여진 생물에게 자연은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음이다. 이 모두가 자연의 가르침이다.

햇살 좋은 날, 모처럼 가까운 곳에 있는 식물원을 찾았다. 오월의 식물원은 짙어지는 신록과 늦은 봄꽃이 대비를 이루어 장관이었다. 식물원 한켠에 걸린 현수막에 ‘오사자연…’이란 구절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식물원의 새소리를 들으며 원장님께 물었다.

“선생님, 까치가 색이 곱다고 길조로 알려져 있지만 곡식을 해치므로 해충을 잡아먹는 까마귀보다 해로운 새라는데 맞습니까?”

“까치가 곡식을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즉각 대답하시며 중국에서 있었다는 일화를 얘기하셨다. 연속으로 큰 흉년이 들자 참새들이 곡식을 먹는다하여 대대적인 참새 소탕령이 내려졌고, 참새들이 사라지자 해충들이 기승을 부려서 농사가 더욱 황폐해지자 결국은 러시아에서 참새를 수입하는 소동이 있었다는 얘기다. 세상의 생명에는 다 존재이유가 있는 법이다.

오사자연(吾師自然), 자연이연(自然而然)이라 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