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

누구에게나 약점이 있다. 나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은 그림이다. 수많은 인간적인 결함도 그렇지만, 지적인 능력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그림 그리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고교 시절까지 그림숙제를 형이 대신해주었을까?! 나무나 꽃을 스케치하는 것도 힘들고, 사람이나 개와 같은 대상을 그려보면 아예 비슷하지도 않다. 내가 자신 있게 그릴 수 있는 유일한 형상은 귀신 그림이다.

서두가 장황한 데에는 까닭이 있는 법. 지난 4월 30일 광주 ‘무등 공부방’에서 특별한 경험을 한 때문이다. 박종석 화가의 강연 ‘검은 고독, 푸른 영혼’을 보고 들은 것이다. 강연의 주인공은 진도에서 나고 자란 한국화가 석현 박은용(1944∼2008)이었다. 귀밑머리 세도록 들어보지 못한 박은용 화백 이야기. 6·25 전란 중에 부모와 일가친척의 참혹한 죽음을 예닐곱 나이에 겪어야 했던 비극적인 개인사로 시작한 강연.

석현은 그날 이후 학살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평생을 살았지만, 그로 인한 심리적 외상(外傷)을 평생 안고 살았다 한다. 분단과 전쟁의 서슬 퍼런 상처로 굴곡진 인생살이를 살아야 했던 신산(辛酸)한 운명. 그럼에도 석현은 생의 마지막까지 붓을 놓지 않았고, 그림으로 자신의 성성한 성정과 인고의 날들을 담았다 한다. 강연제목이 ‘검은 고독, 푸른 영혼’인 연유는 거기 있다. 죽음과도 같은 절대고독 속에서 피워낸 눈 시리도록 시퍼런 영혼!

한국의 미술교육이 서양에 경도되어 있었기에 나는 서양화에 익숙한 편이다. 원근법을 발견한 이후 서양화가들이 보여주는 선연한 인간 중심적인 관점이 매혹적이기도 했다. 성서와 신화의 세계 그리고 유럽인들의 일상을 화폭에 담아낸 그들의 그림은 충분히 이해 가능한 것이다. 그런 정황이 인상파 등장 이후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이제 우리는 ‘포스트모던’도 낡아져버린 21세기 시공간에 거주하고 있다.

서라벌예대에서 서양화를 배우고, 하루 20시간 데생에 몰두했던 석현은 어느 사품엔가 한국화로 방향을 전환한다. 강연에서 만난 석현의 그림은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었다. 박종석 선생에 따르면, 석현은 적어도 2만점 이상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 가운데 몇 점이나 살아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훗날 화순의 두강마을에 정착해 혼신의 힘으로 이 나라 산야와 민초들의 나날을 따뜻한 필치로 그려낸 석현 박은용.

1568년 피터 브뤼헬이 그린 ‘장님의 우화’에서 나는 루터의 종교개혁 50년 세월의 허망을 독서한다. 프랑스 군대가 마드리드 시민들을 학살하는 장면을 담은 프란치스코 고야의 ‘1808년 5월 3일’에서는 신의 부재와 냉정한 무관심을 읽는다.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에 드러난 전쟁의 참상에도 신은 결석한다. 그래서다. 인간의 구원은 인간적인 노력과 지극한 헌신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이. 그런데 석현의 그림은 다른 세계를 열어젖힌다.

2006년에 석현이 그린 ‘귀로’를 보자. 소장수가 큰 뿔을 가진 황소 세 마리를 데리고 담배를 피우며 느긋하게 걸어간다. 그 주변에 생선꾸러미와 작은 보퉁이를 둘러맨 두 사내가 걸음을 옮긴다.‘귀로’에서 내가 주목하는 대상은 붉은색 원피스를 입은 젊은 아낙이다. 머리를 질끈 동인 그녀의 광주리에는 닭 두 마리와 오리가 들어있다. 노란 옷을 입은 아이가 평온한 얼굴로 그녀 등에 업혀 있다. 삶을 향한 그녀의 갈망은 광주리를 움켜쥔 두 손과 금방이라도 뛰어내릴 것 같은 생명들과 이목구비 뚜렷한 아이로 형상화돼 있다.

‘귀로’는 한국농촌의 장날풍경과 훈훈한 정감을 소환한다. 오래도록 잊고 살았던 까까머리 소년의 어린 기억이 환하게 살아오는 환각을 본 것이다. 그래서일까?! 굳이 한국화와 동양화의 경계와 근거를 물었던 어리석음을 새삼 반추하는 까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