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

올해도 어김없이 숲은 일어서고 있다. 초록과 연두(軟豆)로 무장한 신록의 나무들이 팽팽하게 봉기하는 4월과 5월의 숲.

이영도 시인은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爛漫)히 멧등마다 그날 스러져간 젊은 같은 꽃사태”로 절창(絶唱)‘진달래’를 시작한다. 4월 혁명으로 산화해간 이 나라 청춘들의 붉은 피와 산야에 하염없이 피어나는 진달래를 대비한다. 오랜 세월 응어리진 한이 일순 터지듯 산등성이를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의 개화를 선연히 드러내는 것이다.

해마다 봄은 그렇게 온다. 시인이 진달래를 바라보는 것처럼 나는 초록 초록한 색으로 산마루를 치달려 오르며 일어서는 숲을 예찬한다. 그것은 분명 지난 겨울 추위와 눈보라와 설한풍(雪寒風)을 이겨낸 자들의 장려(壯麗)한 저항의 결실일 터다. 이즈음 이 나라 산천을 돌아보는 것은 자연이 베푼 위대한 축복을 확인하는 일이다. 살아있음을 명명백백하게 확인하는 환희의 순간이 바야흐로 우리 곁에 있다.

다정다감한 김영랑 시인은 울안의 모란으로 봄날의 서정을 그려냈으되, 눈 들어 먼 산 바라보면 거기 또 다른 봄의 일어섬이 있다. 혹자는 봄날에 꽃을 보며 찬탄하지만, 나는 일어서는 숲과 봉기하는 산야에 경탄한다. 거역할 수 없는 뭇 생명의 소리 없는 아우성과 침묵의 환호는 얼마나 깊고 웅장하며 창대한가?! 사계의 운항법칙에 순응하는 초목의 생동은 해마다 인간세의 번다함과 유한함을 깨우치곤 한다.

2017년부터 시작된 ‘대구시민대학’이 올해로 세 해를 맞았다. 불초한 나도 인문학 강연 한 자락에 이름 올린다. 4월 25일 <한반도를 노려보는 대륙과 해양세력>이라는 제목으로 대구 시민들을 만났다. 대구시청별관에 마련된 강연장에는 200여 청중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순(耳順) 고비를 넘긴 분들이 다수였으나, 간간이 젊은 축들도 강연에 몰입하여 아연 흥미로운 이야기 마당이 펼쳐진다. 대구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하는구나, 하는 사념.

처절하게 실패한 역사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중심으로 일본과 청나라의 침략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무능한 왕과 부패한 벼슬아치들의 행악질로 사그라지던 나라의 명운을 건져낸 임란의 의병들이 무명의 백성이었음을 밝힌다.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로 황태극 앞에 온몸과 머리를 조아려야 했던 인조의 참혹한 몰골과 ‘환향녀(還鄕女)’와 ‘호로자식(胡虜子息)’을 말한다. 실패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왕조의 붕괴는 필연의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21세기 우리도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병자호란을 다룬 ‘최종병기 활’(2011)은 가공인물 ‘남이’를 등장시켜 747만 관객을 동원한다. 조선 신궁으로 이름을 떨치던 남이가 ‘육량시(六兩矢)’로 무장한 청의 명궁 쥬신타를 혼내주는 허무맹랑한 영화. 반면에 김훈 작가의 소설원작에 기초한 ‘남한산성’(2017)은 385만 관객을 불러 모은다. 우울하고 참람(僭濫)한 실패를 수용하지 않으려는 완미(頑迷)하고 썰렁한 객석.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아는 것이다”(<논어>, 위정편)라고 갈파했다. 말을 바꾸면 이쯤 되리라. “실패한 것을 실패했다고 하고, 성공한 것을 성공했다고 하는 것, 그것이 성공하는 것이다” 실패를 외면하고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우리는 멀리 나아갈 수 없다. 패배를 인정하고 그것의 원인과 과정 및 결과까지 통렬하게 성찰해야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이다.

시민들에게 나는 힘주어 말하고자 했다. 우리는 미-중-일-러 사이에 낀 새우가 아니다. 우리는 이제 최소 돌고래다. 우리만 우리의 힘과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의 결과는 우리 국민이 하나 되어 만들어온 결과다.

대구시민대학 강연장을 나서는 청중들의 발걸음은 무척 가벼워 보였다. 이참에 시민대학을 개설한 대구시에 재삼 감사와 축복을 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