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신 선

지나간 일은 원인무효다

지나간 일은 원인무효다

긴 겨울 혹한에 손바닥 동상이든 시누대 잎들이

두껍지 않은 백노지색으로 마른다

서울 북쪽까지 이민 온 마른 잎들은

끊어진 철근처럼 속의 평행맥들 퉁그러져 나왔거나

영광도 굴욕도 없이 찢긴 깃발처럼

일제히 고사한 줄기 끝에 매달려 있다

부근의

방부제 친 미라처럼 썩지 않는

몇 구의 폐기된 궂은 잎들 겹쌓인 속에서

그러나

온몸의 지기를 끌어올리느라 이맛전까지 파랗게 질린

여남은 그루의 죽순들

비밀결사하듯 막 신발끈 풀고 앉아

구호 삼키고 있다

지나간 일은 모두 원인무효다

새로운 시작이다

겨울의 혹한 속에서 잎사귀의 색깔이 바뀐 시누대들도 그 엄청난 시련을 견디며 대항하기 위해 진력을 다 모아 죽순을 끌어올리고 있음을 관찰한 시인의 눈은 인간을 겨냥하고 있다. 아무리 힘든 시련과 고난이 닥쳐와도 그것을 견디며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