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구에 핀 꽃’

이대환 지음
아시아 펴냄·장편소설·1만5천원

이대환 작가

소설 ‘슬로우 불릿’과 ‘붉은 고래’를 쓴 포항 출신 중진 작가 이대환(61) 작가가 11년만에 장편소설‘총구에 핀 꽃’(아시아)을 내놓았다.

이 작가는 분단과 전쟁 등 격동의 현대사를 다룬 사회와 역사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을 다룬 주제와 시대적 격랑에 휘말려 고투해 나가는 인간의 운명을 집요하게 추적하면서‘더 인간다운 사회체제에 대한 탐구’등으로 “당대의 야만과 맞서며 시류에 야합하지 않고 문제의식이 예리한 작가”로 평가를 받는다.

‘총구에 핀 꽃’은 등단 40주년을 맞이한 작가의 야심작으로 그의 모든 문학적 시도와 사상적 모색이 이 장편소설에 집약돼 있다.

이번 소설은 전쟁을 거부하고 1967년 주일쿠바대사관에 망명한 탈주병 한국계 미군 김진수(미국 이름 케네스 그릭스)의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이 작가가 이번 소설을 처음 구상한 건 15년쯤 전이었다. 2003∼2004년 무렵, 1960년대 베트남전 기간에 ‘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베헤이렌’)을 이끌었던 일본의 작가, 시민운동가 오다 마코토(小田實)씨를 만났다가 미군 탈주병 김진수의 탈출 스토리를 접했다. 김진수는 1967년 일본에서 벌어진 한국계 미군병 주일쿠바대사관 망명사건의 실제 주인공이다. 6·25 전쟁고아였다가 미국으로 입양돼 미군으로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미국의 침략 전쟁을 보고 전쟁의 증오를 느껴 주일 쿠바대사관을 통해 망명했다. 베트남전의 포화가 한창이던 당시, 한국계 미군병의 망명은 큰 화제를 모으며 일본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오다 마코토 선생이 저의 고향인 포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처음 김진수의 탈출 스토리를 들었는데 마음이 쓰렸어요. 그때부터 그를 가슴에 넣고 소설로 살아가게 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15년이나 잊지못할 연인처럼 가슴에 품었던 고독한 인간을 내보내니 한편 홀가분합니다. 평화와 작은 인간의 관계를 생각하는 영혼들이 이제는 손진호의 젊은 날들을 좀 편히 쉬게 해주길 희망할 따름입니다.”

소설은 전쟁의 운명을 거부하고 평화의 길을 개척한 주인공 김진수의 삶의 궤적을 모델로 삼은‘손진호’라는 인물을 탄생시켰다. 이 작가는 전 일본 언론에 화제됐던 김진수 망명 사건 당시의 보도 내용, 한국 외교부가 비밀 해제한 외교문서, ‘베헤이렌’ 노인들의 회고록, 김진수의 이야기를 연상하게 하는 일본 소설가 호타 요시에(堀田善衛)의 소설 등을 바탕으로 김진수를 책 속의 주인공 손진호로 부활시켰다.

2018년 73세인 손진호의 아들로 작가지망생인 ‘나’라는 화자가 쓰는 손진호의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을 더듬는 소설을 들려주는 액자 소설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손진호는 한국전쟁의 고아로 미국에 입양돼 히피 문화를 체화한 후 미군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한다. 일본으로 휴가를 나온 그는 주일쿠바대사관에 잠입하지만 망명길이 막힌다. 망명에 실패하고 유폐의 인간으로 일 년을 견딘 뒤 다시 지구를 도는 험난한 길을 선택한 손진호에게는 확고한 신념이 있다.“국가나 거대 폭력이 평화를 파괴할 수 있지만, 작은 인간의 영혼에 평화가 살고 있다면 평화는 패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설은 김진수를 모델로 삼지만, 김진수와 손진호 사이에는 뚜렷한 격차가 존재한다.

작가는 자신만의 고유한 사유와 상상력으로 새로운 서사를 조형해내고자 심혈을 기울인 끝에 분명한 성과를 냈다.

특히 서울의 전쟁고아였던 김진수와 달리 손진호는 포항에 버려진 전쟁고아였다가 ‘흰 수염 푸른 눈 신부’가 많은 수녀들과 일궈나가는 송정원(송정수녀원과 송정고아원, 현 포항제철소)에서 성장하게 만들어 거기서 아름답고 평화로운 추억을 아로새기게 한다. 이것은 손진호의 고달픈 평화 여정에서 청년기에 미국에서 익히는 히피정신과 함께 그를 지켜주는 축이 돼준다. 그래서 소설은 전후의 포항, 영일만 바닷가를 그의 회상에 담아내는가 하면 2018년 6월에 아들과 함께 60년도 더 지나 처음 고국을 방문한 길에 머나먼 귀향을 하듯 다시 포항을 찾아오게 된다. 손진호는 포항 효자 언덕의 ‘흰 수염 푸른 눈 신부’의 묘소 앞에 꿇어앉아 이렇게 토로한다.

이대환 작가
이대환 작가

“아버지 신부님, 저는 저의 영혼 하나를 구원하느라 정말 힘이 다 빠졌습니다. 젊은 날들의 저는 고향을 상실하고 정처 없이 떠도는 방랑자가 아니라, 상실한 고향을 찾아 기나긴 여행을 수행하는 젊은이였습니다. 한 작은 인간의 영혼을 구원해준 저의 여행은 평화를 위한 평화에 의한, 평화의 여행이었습니다.”(316∼317쪽)

이처럼 이대환 작가는 한국 현대사와 세계사에 대한 거대 서사를 펼쳐 보이는 이번 소설에서 진정한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

문학평론가 정은경 중앙대 교수는 “이 소설은 실존 인물 김진수의 이야기이자 전쟁이라는 세계사적 흐름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최인훈 소설 ‘광장’의 세계사적 버전이라 할 수 있다”고 평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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