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송도동 ‘美해병1비행단 6·25 전몰용사 충령비’ 관련
제보 김진홍씨 “일본 군인들 넋 기리는 충혼비” 주장 제기
당시 언론자료 근거로 공개… 보훈처 “현재론 파악 안 돼”

포항시 남구 송도동 포항기상대 앞에 있는 ‘미 해병대 제1비행단 전몰용사 충령비’가 일제강점기 일본군들의 ‘충혼비’였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장이 예상된다. /이용선기자

“미 해병대 충령비가 아니라 일본군 충혼비라고?”

한국전쟁 당시 순직한 미 해병대의 희생을 위로하고자 포항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진 ‘충령비’가 실제로는 일제강점기 일본군들의 ‘충혼비’였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장이 예상된다. 매년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기념해 ‘충령비’ 앞에서는 대한민국 수호를 위해 희생한 영웅들을 위한 위령제가 거행돼 왔다. 이 주장대로라면 포항에서는 식민정책을 위해 대한민국을 침략한 일본 군대의 넋을 기려온 꼴이 된다.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은 9일 ‘미 해병대제1비행단 전몰용사충령비’가 1935∼1937년 일본군에 의해 건립된 ‘일본군 충혼비’라고 주장했다. 김 부국장은 “1935년에 일본 기자들이 일제 강점 25주년을 기념해 집필한 ‘포항지’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에 ‘미 해병대제1비행단 전몰용사충령비’와 유사한 조감도가 있다”고 밝혔다. 김 부국장이 입수, 본지에 공개한 ‘포항지’에는 실제로 ‘미 해병대 제1비행단 전몰용사충령비’와 흡사한 ‘충혼비’가 소개되고 있다. 이 책에는 ‘충혼비’를 ‘제국재향군인회 포항분회(일본군)’가 세운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특히, 1937년 일본인들이 경영했던 부산일보의 3월 14일자 경북면에는 “3월 10일 육군기념일을 맞이하여 포항재향군인분회(일본군)에서는 ‘충혼비’에서 전몰용사의 위령제를 거행하고 대구보병 제80연대에서 나카노 중좌가 임석한 가운데 포항분회, 포항청년단, 소방조, 양 학교 기타 각계 단체가 참여해 성대한 식전을 거행하였다”는 기사가 실렸다. 신문기사를 통해 포항에 ‘일본군 충혼비’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김 부국장은 설명했다.

김 부국장은 “포항에 실제로 건립된 ‘일본군 충혼비’의 흔적을 찾던 중 형태가 거의 똑같은 기념비를 발견했는데, 그게 바로 ‘미해병대제1비행단 전몰용사충령비’”라며 “일본군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충혼비’가 세월을 거치면서 변질돼, 현재의 ‘충령비’로 뒤바뀌었다고 보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문제의 기념비는 지난 2003년 5월 30일 국가보훈처에 대한민국 현충시설(관리번호 33-2-31)로 지정됐다. 1952년 12월 22일 구 포항역 광장에 최초로 건립된 이후 1969년 4월 현 위치인 포항시 남구 송도동 311-7번지로 이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6·25전쟁에 참전한 미 해병대 제1비행단 전몰용사들의 넋을 기리고 추모하고자 당시 미군 통역관으로 근무했던 이종만씨가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본지 취재 결과, 현충시설 지정을 담당하는 국가보훈처는 물론, 지자체인 포항시와 관리주체인 한국자유총연맹 포항시지회에서도 문제의 기념비 건립과 관련해 아무런 근거자료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포항시 관계자는 “비석과 관련해 포항시가 가진 자료의 출처가 국가보훈처이기 때문에 시에서는 알려진 내용 말고는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경북남부보훈지청은 “현재 가진 자료로는 파악이 안된다”며 “기록물 관리 보존기간이란 게 있기 때문에 (현충시설 지정 이후) 16년이나 지난 지금 관련 자료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관련기관·단체에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가오는 6월 6일 현충일이 되면 기념비 앞에서 미 해병대를 위한 위령제가 열린다. 한국자유총연맹 포항시지회 송도동분회가 주최, 주관하며 포항에 주둔하고 있는 미 해병대 ‘캠프무적’ 부대원들도 이날 기념비 앞에서 호국영령의 넋을 기린다. 더 큰 논란이 일기 전에 하루빨리 진위를 가려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바름기자

    이바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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