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물고다니는 리트리버의 행동특성을 이용한 장보기 훈련장면.
뭐든 물고다니는 리트리버의 행동특성을 이용한 장보기 훈련장면.

어느 TV방송에서 개가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에 혼자남아 생활하는 사연을 방영한 적이 있었다.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이 개만 남겨두고 이사를 갔는데, 개는 그 집을 떠나지 않고 주인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혼자 동네를 배회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습관화되어 있는 이 개의 경우 집에 돌아왔을 때에 가족들이 집안에 있고 없고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개와 사람 사이에 강한 유대관계, 즉 무리, 공동체, 반려라는 개념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보통 개와 사람이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공유하고 지속적인 스킨십과 유희적 행위 등의 반복적 교감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인데, 평상시 나 홀로 마당의 개집에 들어가 쉬다가 온종일 밖을 쏘다니며 살아가는 개가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집에 돌아와 ‘어! 왜 집에 사람이 안보이지?’하면서 집안을 살피거나 가족들을 걱정할 가능성은 없다.

언제나 그랬듯이 자연스레 집에 들어가 쉬거나 그릇에 먹을 게 놓여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그러다가 쉴 만큼 쉬었으면 동네 이곳저곳을 다니며 나름의 활동을 하고 집에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인데, 이런 행동들을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의 관점에서 놀이공원에서 부모를 놓쳐버린 아이가 엄마를 애타게 찾아다니는 것처럼 개들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으로 방송이 각색한 것 뿐이다.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이 개가 리차드 기어가 출연한 영화 ‘하치이야기’에 나온 하치처럼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매일 매일 기다리는 듯이 보이지만, 개는 사실 그냥 자신의 집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말과 개의 만남, 승마장의 개. 개 주인의 직업이 개의 행동을 만든다.
말과 개의 만남, 승마장의 개. 개 주인의 직업이 개의 행동을 만든다.

우리는 사람의 관점에서 개를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개는 늑대와 유전자가 유사하므로 지금까지 잘 연구되어 있는 늑대의 행동 습성과 비교해 개를 바라보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과학자들은 지난 10년 동안 개의 몸집, 털가죽, 털모양 등의 변이에 관여하는 DNA를 발견해 왔으며, 개 질병관련 유전자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진행해 왔다. 그 결과 일부 사람들에 의해 주관적으로 주장되던 내용들이 객관적으로 설명되기 시작했다. 개의 행동학적 연구만 제외하면, 개에 관한 유전학적 연구는 지난 10년간 가히 폭발적인 수준이었다.

연구기법들이 점차 발전해 최근에는 늑대와는 다르게 개에게서 특이하게 나타나는 유전자를 포함해 행동관련 유전자, 뇌에 작용하는 유전자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기 시작하면서 더 깊이 있게 개의 행동을 분석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최근에는 개의 뇌파를 분석해서 개와 대화를 시도하려는 브레인 머신 인터페이스(Brain Machine Interface, BMI)라고 불리는 기술, 즉 뇌에서 발생하는 전기신호로 컴퓨터나 기계를 작동시키는 기술을 이용해서 강아지 뇌에 BMI 장치를 이식하고, 그 뇌파를 컴퓨터가 분석해 주인이 어떤 질문을 하면 강아지의 특정한 뇌파를 인식해 음성으로 만드는 시도가 성공한 바도 있다.

수영을 좋아하는 골든리트리버와 함께 생활하며 수영을 하게된 말라뮤트.
수영을 좋아하는 골든리트리버와 함께 생활하며 수영을 하게된 말라뮤트.

늑대와 개의 행동을 구별하는 핵심적인 특징은 과사회성(hypersociability)인데, 늑대보다 사람에게 더 친근한 사회성을 보이는 개의 행동 유전자를 탐색하는 연구들이 진행중이다.

GIF21이라는 단백질은 다른 유전자의 활성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데, 사회성이 강한 개들은 GIF21유전자가 특정한 형태를 보였다. 반면 늑대와 비슷한 냉담한 행동을 보이는 개들은 늑대의 GIF21유전자와 비교해보면 차이가 별로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 연구결과이다.

이런 연구들은 늑대와 개 행동의 차이에 대한 이해를 위한 시작이기도 하지만, 어떤 유전자를 통해 사회적 행동이 나타나는 것인지, 나아가 인간의 행동학적, 정신적 문제들을 더 이해하기 위한 연구자들의 관심 분야이기도 하다.
 

이동훈
이동훈

윌리엄스-보이렌 증후군(WBS)을 가진 사람들 역시 과사회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WBS에 걸린 어린이들은 종종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아무 사람하고나 허깅을 한다. 유전자를 비교분석한 결과, 개의 6번 염색체에는 인간의 WBS 유전자와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실험쥐를 통한 검증에서도 이 유전자에 변화를 주면 사회성이 강화되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앞으로 개의 행동연구는 더욱 세분화 될 것이고, 그에 따라 행동 관련 유전자들을 찾아내는 연구들이 IT기술과 접목하여 더욱 본격화 될 것으로 보인다.

/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소장(마사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