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음악에게 ‘철학과 정신’이라는 새로운 옷을 선사하였으며 음악으로 인류에게 구원과 미래의 희망을 보여준 진정한 악성이었다.

칼 슈타이어가 그린 베토벤의 초상화.

모리스 바링(1874∼1945)이 두 의사를 등장시켜 만든 가상의 유명한 대화가 있다.

의사1: 임신중절에 관한 견해를 듣고 싶소. 아버지는 매독환자이고 어머니는 결핵에 걸렸소. 이미 자식을 넷이나 낳은 경험이 있는데 첫째는 맹인, 둘째는 사산, 셋째는 농아, 넷째는 결핵에 걸렸지! 당신이라면 어찌하겠소?

의사2: 임신중절을 해야겠군요.

의사1: 그렇다면 당신은 베토벤을 죽였소.

위의 이야기는 ‘베토벤 오류’라고도 불리며 많은 버전의 다른 이야기로도 소개된다. 낙태 반대론자들에 의해 주로 인용되는 이야기인데 사실과는 다르다. 베토벤은 다섯째가 아니라 형이 유아 때 사망했기에 장남이었으며 사실보다 과장된 이야기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이 이야기의 사실관계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왜 베토벤인가 하는 것이다. 베토벤은 많은 어려움을 가진 작곡가였으며 그의 작품에는 그것을 극복하고 인류의 창대한 미래를 기원하는 위대한 작품을 썼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우리가 베토벤을 ‘악성(樂聖)’이라 말하고 그의 음악과 삶에 유독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르네 프리네가 그린 회화 -크로이처 소나타
르네 프리네가 그린 회화 -크로이처 소나타

베토벤의 어린 시절은 불운하다 못해 끔찍했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긴 하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궁정음악가였다. 아버지 ‘요한 판 베토벤’은 그 아버지의 후광으로 궁정악단에서 테너를 담당하는 성악가가 되었으나 그리 뛰어난 실력을 가지지 못했다. 이 후 베토벤이 3살 되던 해부터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 중세를 보이게 되었으며 그의 아들 베토벤보다 14살 많은 신동 모차르트의 소문을 듣고 모차르트 부자를 롤 모델로 삼기에 이른다. 모차르트의 아버지와는 달리 조기 교육에 대한 이론이 무지하였던 그는 술에 취한 채 집에 들어와 습관적인 폭력을 일삼았으며 자고 있던 어린 베토벤을 깨워 밤 세워 피아노 연습을 시키곤 하였다. 요즘 같았으면 가정 폭력으로 고소를 당했을 일이며 웬만한 아이들은 집에서 도망쳤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의지로 버텨냈는지, 도망치지 못했는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베토벤의 음악환경이었다.

베토벤의 작품을 통틀어 보면 그의 인생이 나타난다. 그의 작품은 시기별로 나뉘는데 시기별 작품의 성격이 크게 차이가 나서 마치 다른 작곡가의 작품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살펴보자면 제 1기는 ‘습작의 시기’로 불리며 그의 나이 23∼32살 정도의 나이에 해당 되는데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작품 등 기존 작곡가들을 모방한 시기이다. 베토벤의 본격적인 작품이 만들어질 준비의 시기라 할 수 있으며 고전주의가 중시하였던 형식의 틀을 충분히 지키며 아름다운 걸작을 만들어낸 시기였다.

 

베토벤의 현악4중주 16번 자필악보.
베토벤의 현악4중주 16번 자필악보.

제 2기는 32∼44살 정도의 시기인데 자신의 음악세계를 펼쳐나가는‘자유와 혁명의 시기’라고 부르고 싶다. 과거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통한 고전파 형식의 최고의 결실이었던 소나타 형식을 파괴, 확대하는 과감한 시도가 나타났다. 소나타 형식은 서사적인 플롯을 가진 이야기의 구조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크게는 제시부, 발전부, 재현부의 3부 형식으로 구성되나 1주제와 2주제, 소경과구, 대경과구, 종결부 등 다양한 음악적 프레이즈 들이 인관관계를 가지고 큰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형식이다. 많은 걸작들이 있지만 필자는 ‘교향곡 제 3번 영웅’을 최고의 걸작으로 뽑고 싶다. 음악도 뛰어나지만 소나타 형식의 위대한 혁명이 이루어 졌기 때문이다. 이전 곡에서는 2주제 까지만 구성되던 주제가 5주제 까지 쓰였으며 제시부와 재현부의 경과구로 역할로 쓰였던 발전부를 제시부보다 더 길게 작곡했다. 이전 모차르트의 교향곡에서 조차 발전부를 제시부보다 더 길게 쓴 예는 없었다. ‘장송 행진곡(Marcia funebre)’풍으로 작곡된 2악장은 다이나믹이 음악에서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변주곡으로 구성된 4악장도 베토벤의 변주의 무한한 세계를 보여준다. 테마를 풀어나가는 고전의 변주방법을 넘어 ‘소프라노 독창 변주’, ‘중창 변주’, ‘코러스 변주’ 등의 방법을 도입하였는데 4악장을 다 듣고 나면 마치 오페라 한편을 모두 감상한 느낌이 든다. 베토벤은 어린 시절 부터 뛰어난 피아노 즉흥 능력을 가졌다고 전해지는데 이 능력은 그의 작품에서 변주적 발전의 능력으로 나타난다.

실제 베토벤의 선율 창작 능력은 선율 작곡 능력이 뛰어난 인물들과 비교할 때 다소 의문이 있으나 짧은 악구를 발전 시켜 음악을 확대하여 작곡하는 변주 기법은 가히 최고이며 ‘교향곡 제 5번 운명(한국, 일본을 제외하고는 운명이라는 부제를 달지 않는다)’에서는 딴딴딴 따∼ 라는 음 4개를 1악장을 넘어서 4악장, 곡의 끝가지 활용한다. 이 능력은 작곡가에게 매우 중요한 능력이며 현재 대학에서 작곡과를 지원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바라는 능력이다.

그는 또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을 10개 남겼는데 그 중 9번 크로이처 소나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곡은 그의 나이 33세인 1803년에 완성되었으며 러시아의 대작가 ‘톨스토이(1828∼1910)’는 이 곡을 듣고 자신이 알고 있는 곡 중 “가장 음탕하고 무시무시한 곡”이라 평했다고 한다. 실제 톨스토이는 그의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에서 주인공의 아내와 바이올리스트 트루하체프스키가 이 곡을 격정에 찬 열정으로 연주하는 것을 보며 질투와 불안을 느끼며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다는 내용인데 이 곡의 1악장을 들어보면 톨스토이가 왜 그런 묘사를 했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는 광기에 찬 음악으로 몰입되고 피아노는 반주에서 완전히 독립되며 바이올린과 피아노는 서로 독립적으로 맞서며 때로는 경쟁을, 때로는 화합을 하며 거대한 음악의 종지부를 찍는다. 베토벤의 젊은 시절의 격정과 방황을 느낄만한 곡이다.

 

베토벤의 무덤.
베토벤의 무덤.

제 3기는 45세에서 만년의 시기인데 ‘내면과 성찰의 시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의 청각이 완전히 떠난 시기이며 오히려 바로크의 음악 어법인 푸가 기법을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고 당시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음악어법을 많이 사용하여 주위로부터 혹평을 많이 들었던 시기이다. 필자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op.125’ 과 최후의 곡 ‘현악 4중주 16번 op.135’를 강력히 권하고 싶다. 합창 교향곡은 최초로 인간의 목소리를 교향곡에 사용하였다는 시도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말할 것이 너무 많은 곡이다. 베토벤은 이곡을 1823년, 그의 나이 53세에 완성했다.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이다. 하지만 그가 이 곡의 4악장에 사용된 쉴러의 시 ‘환희의 송가’를 처음 만난 것은 27세의 청년 때였다. 베토벤은 이 시를 긴 시간동안 간직하여 끝내는 최고의 작품을 완성해 낸 것이다. 위대한 작품에 대한 긴 열망은 베토벤 작품의 원천이며 최고의 장점이다. 4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은 신과 인간의 장대한 승리와 희망의 드라마가 있으며 1악장의 서주부는 신의 천지창조를 느낄 수 있으며, 후기 낭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교향곡 1번 서주부를 들어보면 베토벤의 교향곡 작품이 왜 교향곡의 신약성서로 불리며 이 후 작곡가들의 관현악곡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있다.

베토벤의 최후의 곡은 현악 4중주였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현악 4중주 16번 op.135의 4악장에는 ‘어렵게 내린 결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으며 Muss ess sein?(그래야만 하는가?), Es Muss sein!(그래야만 한다),라는 수수께끼 같은 메모가 있다. 많은 이들이 이 메모에 대한 창의적인 시도를 하였지만, 필자는 이 메모에 베토벤의 작곡의지가 모두 담겨있다고 본다. 베토벤은 자신의 작품에서 상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음악의 가능성들을 항상 고민하고 선택하였으며 완벽한 확신이 들어야만 그 작품을 끝낼 수 있었다. 밤새워 한곡을 신이 주신 재능으로 간단히 작곡하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베토벤은 일일이 소개하기 힘들 정도로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으나 늘 더 낳은 영혼을 가지고자 성찰했으며 인류에 보탬이 되는 한 사람이 되기를 갈망했다. 그는 음악에게 ‘철학과 정신’이라는 새로운 옷을 선사하였으며 음악으로 인류에게 구원과 미래의 희망을 보여준 진정한 악성이었다.

/문양일 포항예술고 음악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