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군 농민이 사과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옛날과 현재, 동양과 서양, 공업도시와 농업도시를 불문하고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은 언제 어디서나 있어 왔다. 때로는 그것이 한 도시나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지니기도 하는 게 현실이다.

프랑스의 보르도((Bordeaux) 지방은 포도로 만들어진 술, 즉 포도주로 오래 전부터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수많은 나라 애주가들의 혀를 매혹하며.

일본의 스시는 애초엔 내륙지역에서 생선을 효과적으로 저장하던 수단으로 만들었지만, 현재는 뉴욕과 런던 등 유행의 최첨단을 달리는 도시 레스토랑에서 최고급 요리로 팔린다.

스페인의 ‘하몽’도 마찬가지다. 돼지의 넓적다리를 소금에 절여 건조·숙성시킨 독특한 햄(Ham)은 이 나라 축산업 발전을 이끌고 있고, 동시에 ‘이베리코 돼지’라는 이름까지 세계인의 기억 속에 각인시켰다.

그렇다면 수려한 주왕산의 풍광으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청송을 대표할 수 있는 특산물은 뭘까? 누가 뭐래도 ‘사과’가 아닐지.

2018년 말 현재 3천339ha의 농지에서 6만2천606톤의 사과를 생산하는 청송군. 이 지역 농가소득의 50% 이상이 ‘새콤달콤한 청송사과’에서 나온다고 한다.

전국의 많은 소비자들이 신뢰하며 구입하는 청송사과. 하지만, 청송군 사과 재배의 역사와 사과를 둘러싼 각종 정보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

“청송사과는 언제부터 생산됐고, 어떤 이유로 높은 인기를 누리는 것인가”라는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해 봄이 기지개를 켜는 청송을 찾았다.
 

1924년~1927년 사이 청송서 첫 재배 추정… 100년 역사 이어져
강수량 적고 일교차 큰 기후 ‘당도’ ‘착색’ ‘저장’에 큰 도움
전국 첫 ‘키 낮은 사과원’ 도입, 타지역보다 한발 빠른 기술 유지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대상 등 ‘전국 인정 특산물’ 자리매김

◆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청송사과’

청송사과의 ‘재배 기원설’은 2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지역에서 독립운동과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한 박치환 씨가 1924년 현서면 덕계리에 사과 묘목을 들여 온 것이 청송사과의 출발점이라는 주장이다.

나머지 하나의 기원설은 안덕면 복리에 살았던 신인수 씨가 일본의 레코드 회사에서 일하던 중 인근에 있던 사과농장을 자주 출입하게 됐고, 그때부터 사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

신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사과 재배기술을 익혔고, 1927년 한국으로 돌아오며 600여 주의 사과 묘목을 들여왔다. 이후 안덕면 복1동에 5천 평 규모의 사과밭을 조성했다고 한다. 이 2가지 재배 기원설을 종합해 볼 때 청송사과의 역사는 100년에 가깝다.

청송군은 서쪽의 대륙성 기후와 동쪽의 해양성 기후가 만나는 지역이다. 해발 고도가 250m로 인근 안동, 영덕, 의성, 영천 등에 비해 높은 지역에 위치했다.

여기에 낙동정맥의 서쪽에 위치해 연간 1천mm 정도의 비가 내려 강수량이 비교적 적다. “생육기간 중 연평균 일교차가 13.4℃로 매우 커 청송사과의 당도와 착색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 농업전문가의 설명이다.

그렇기에 청송군에서 사과를 키우는 농민들은 “우리 고향이 사과 재배의 최적지”라고 입을 모은다.

청송군청 관계자 역시 “적절한 일조량으로 사과의 빛깔이 곱고, 사과 재배에 적합한 토질이라 과즙이 풍부하고 저장성도 뛰어나다”고 부연했다.

◆ ‘키낮은 사과원’ 도입으로 재배 기술 한 단계 높여

청송군은 1995년 전국 최초로 ‘키낮은 사과원’을 도입해 1999년부터 대묘 생산과 표준과원을 운영하고 있다. 농업기술센터의 사과대학 운영, IPM(친환경 병해충 종합관리) 단지 조성 등 선진 재배기술의 조기 도입으로 타 지역에 비해 한 단계 높은 재배기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 국내 사과산업은 생산의 과잉과 소비 감소, 가격 하락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청송의 ‘키낮은 사과원’이 아래와 같은 과정을 통해 도입됐다.

1995년 경상북도청에서 일하던 과수 관계자들은 미국 워싱턴의 사과산업 현장을 견학하며 선진 재배 시스템에 놀란다. 이에 자극받은 경상북도는 ‘신 경북형 사과’ 생산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게 된다.

같은 해 안동대학교 원예육종학과 윤태명 교수의 주선으로 청송군 현동과수협업단지 관계자들이 이탈리아 북부 남티롤을 방문한다.

그들은 연구기관과 판매조합, 유통 및 가공시설과 과수 묘목 컨소시엄 등을 견학한다. 그 경험을 통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이탈리아 남티롤을 벤치마킹하기로 한다. 한국에 ‘밀식 재배’가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선 우여곡절도 많았다. 공항에서 묘목을 압수당하는 등의 고충을 겪은 후에야 연구용으로만 활용한다는 조건으로 국내 도입에 성공하게 된 것.

이후 이탈리아 남티롤의 M.9 대목(나무의 크기를 매우 작게 하는 특성을 지닌 대목으로 관리가 용이하고 생산성이 높다)을 이용한 ‘세장방추형 고밀식 재배체계’는 신 경북형 사과의 생산 모델로 자리 잡게 된다. 이때는 청송군의 사과 재배가 새로운 도약을 한 시기이기도 하다.

청송군은 M.9 대목으로 ‘키낮은 사과원’을 확대했고, 1999년부터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매년 10만 주에 가까운 M.9 대목 또는 이중 접목묘를 농가에 보급해왔다. FTA기금 과수생산시설 현대화사업도 ‘키낮은 사과원’ 조성에 큰 도움이 됐다.

윤경희 청송군수가 청송사과를 홍보하고 있다.
윤경희 청송군수가 청송사과를 홍보하고 있다.

◆ 사과를 통한 농가소득 증대 노력 이어져

청송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된 천혜의 자연환경에 전통과 문화가 하모니를 이루는 고장으로도 알려져 있다. 아름다운 풍경과 신비로운 전설이 함께 하는 주왕산 역시 청송군의 보물이다. 여기서 소박한 자태를 드러내는 사과꽃을 바라보는 건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적지 않은 위로와 안정감을 준다.

청송군은 여러 차례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대상’을 받은 청송사과를 지역을 상징하는 특산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오늘도 계속하고 있다.

최고 품질의 사과를 생산하기 위해 ‘명품사과 재배단지 사업’을 추진하고, 사과 재배농가가 늘어남에 따라 농가별 맞춤 방제와 제초의 어려움을 해결할 방초망 등 친환경 자재를 공급하고 있는 것. 이를 통해 고품질 청송사과 재배 기반을 마련해 농가소득을 높인다는 것이 청송군의 복안이다.

또, 날로 고령화되는 농촌 현실에 대응해 농번기 영농인력 확보와 사과 공급의 원활한 체계 구축을 위해 21억 원을 들여 청송군영농일자리지원센터를 건립했다. 이에 따라 농촌 일손돕기를 위해 청송을 찾는 사람들도 해마다 늘고 있다.

청송의 사과가공지원센터 운영은 지역 특산물 가공으로 부가가치를 높이고, 새로운 소비영역을 창출하는데 기여 중이다. 센터엔 사과즙 생산라인, 동결건조기, 열풍건조기, 건식분쇄기, 습식분쇄기, 원통형 볶음솥 등 현대적 가공시설이 설치돼 있다. 이를 통해 2017년엔 가공식품 8종 100t을 생산해 농업 부가가치 창출과 농가소득 증대에 기여했다.

◆ 청송농업의 미래를 위한 교육에도 투자

청송군은 사과 재배를 포함한 미래 청송 농업을 이끌 전문 농업인 양성에도 땀을 쏟고 있다. 농업 종사자의 미래 대응 역량을 강화하고, 품목조직 활성화 등을 위한 다양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것.

교육에 참가한 농민들은 이론과 실습, 사례 발표, 선진화된 현장 견학 등을 하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최근 4년간 농업인실용교육 37개 과정 5천551명, 청송사과친환경대학 806명, 청송미래농업대학 214명, 경영마케팅 교육 112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여기에 사과 외에도 자두와 복숭아 등 지역 특화 분야의 교육 과정도 운영함으로써 청송의 젊은 농민들이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농업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관광객의 청송 유입을 위해서는 농촌 체험농장의 조직화와 체험 서비스의 품질 향상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시 찾고 싶은 관광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인들의 친절과 위생적인 환경, 볼거리와 먹을거리도 중요하지만 고급화된 관광 프로그램 역시 필수다.

이와 관련 청송군은 관광객의 만족도를 높여가기 위해 농촌관광 프로그램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대표 체험 14종과 연계 체험 10종, 개별 체험 22종을 개발했고, 농촌 팜파티 프로그램과 지역 축제 체험부스 운영 등을 통해 관광활성화에 적극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인심 좋고 살기 좋은 도시 건설’은 모든 지자체의 꿈이다. 청송군 역시 사과 향기 그윽한 풍요롭고 행복한 고장이 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가 열린 야구장에서 진행된 청송사과 홍보행사.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가 열린 야구장에서 진행된 청송사과 홍보행사.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야구장서 특별홍보 행사
시원하고 상쾌한 맛 ‘홈런’

청송군은 수입 과일이 대거 유입되는 등 과일 소비 형태가 다양화되고, 청년층의 사과 소비가 많지 않다는 현실을 감안해 청송사과의 다양한 홍보·판매촉진 방안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지난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가 열린 야구장에선 ‘청송사과 특별 홍보행사’가 펼쳐졌다.

많은 수의 소비자층이 모이는 대규모 스포츠행사에서 특별한 이벤트를 진행함으로써 청송사과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소비계층의 다변화를 도모한 것이다.

한국시리즈 개막전과 함께 열린 청송사과 특별 홍보행사는 입장객들에게 무료로 사과를 나눠주는 ‘청송사과 증정’과 시식 행사, 다양한 부대행사가 펼쳐져 현장에 모인 관람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이 홍보행사는 청송군의회와 청송군 농협, 사과생산자 조직 등이 대거 참여해 청송의 단합된 힘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았다.

준비 과정에서부터 행사에 참여한 청송군 관계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야구장에서 청송사과의 진가를 보여줄 수 있었기에 기쁨이 컸다”며 “상대적으로 사과 구매도가 낮은 청장년층을 상대로 한 마케팅이라 여러 가지로 신경을 많이 썼는데 호응도가 높아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며 환히 웃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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