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

1월 29일 정부는 사업비 24조원에 이르는 23개 사업의 예비타당성 (예타) 조사를 면제했다. 예타조사는 국가예산으로 추진하는 대규모 공공사업이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발전에 부합하는지 여부에 따라 사업실행여부를 평가하는 사전조사를 뜻한다. 그것은 정치권력을 장악한 개인과 정파의 자의적인 국가예산 오남용을 방지하는 최소의 안전장치다. 그런데 촛불로 출범한 정권이 지난 정권들의 그릇된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정부가 내세운 예타면제 근거는 국가의 균형발전이다. 경제부총리는 “수도권과 여타지역의 격차가 더 심각해지는 상황이 오기 전에 균형발전을 이루어야 한다. 그것이 예타면제의 일차적인 목적이며, 경제 활력 제고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말한다. 이런 논조는 1월 24일 대통령의 지적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우리가 경제성보다 균형발전에 중점을 두고 있음에도 예타조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지자체 사업이 많아 예타면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효율적인 예산집행을 위해 국가가 여러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나라 전체를 고르게 발전시키기 위한 방향이라면 쌍수 들어 환영해야 마땅하다. 그러하되 예타면제 대상사업 선정을 둘러싼 작금의 논란은 면밀히 들여다볼 구석이 없지 않다. 우리 기억에 아직도 생생한 4대강 사업이나 경인 아라뱃길 사업 같은 대표적인 혈세낭비 사례 때문이다.

200만 년 넘게 흘러 자연스레 조성된 강을 마구잡이로 파 뒤집고 시멘 콘크리트를 쏟아 부어 강을 죽이는데 불과 2년 만에 24조원의 거액을 탕진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4대강 사업.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과 얼추 비슷한 시기인 2009년 중국은 ‘항주오 (港珠澳) 대교’를 착공하여 2018년 준공한다. 홍콩과 주해, 마카오를 바다 위로 연결하는 세계최장의 기념비적인 다리로 길이가 55km에 이르며, 해수면 다리길이만 해도 23km에 이른다.

왕복 6차선 다리로 홍콩과 마카오를 연결함으로써 그동안 자동차로 4시간, 배로 1시간이 소요되던 홍콩-마카오 운행시간이 30분대로 단축됐다. 우리가 일쑤로 얕잡아보는 중국의 저력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중국을 사회주의 통제사회라고 하지만 그들은 국가경제와 인민의 복리민복을 위해 22조원 예산으로 세계건설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자연을 파괴하고 천문학적인 예산을 탕진한 4대강 사업과 천양지차가 아닐 수 없다.

예타면제는 예산낭비 우려와 아울러 정치적 판단을 고려해야 한다. 주지하는 것처럼 내년에는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다. 중요한 선거를 목전에 두고 권력을 장악한 정권이 예산을 전횡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도입된 것이 예타조사다. 따라서 24조원이 투입될 공공사업의 예타면제는 ‘이하부정관 (李下不整冠) 과전불납리 (瓜田不納履)’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저기서 경제가 어렵다는 말이 자주 나오는 시점이다. 그런 연유로 청년 일자리 창출과 사회 저소득층의 사회적 안전망확충 같은 사안이 절박한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토건사업에 거액의 예산을 집행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다. 시간과 더불어 예타면제 사업이 얼마나 타당성 있는지 여부가 드러날 터이나, 무엇인가 찜찜한 생각이 고개를 내밀고 있음은 진지하게 부정하기 어렵다.

예타면제에서 가장 큰 문제는 원칙에 입각하여 원칙을 지키고 원칙에 따라 평가받겠다는 현 정권의 정치철학이 훼손되지 않을지, 하는 우려라고 할 수 있다. 정권이 내세운 금과옥조(金科玉條)인 ‘원칙’을 타협하고 한 걸음 물러섬은 ‘여리박빙(如履薄氷)’의 자세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예타면제를 재삼재사 숙고하여 국가예산의 효율적인 집행과 나라 전체의 균형발전을 이뤄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