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br>​​​​​​​경북대 교수·노문학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

책을 불태우고 선비들을 묻어버린 희대의 사건을 분서갱유(焚書坑儒)라 한다. 550년 이어진 춘추전국시대의 종결자 진시황이 학자들의 정치적 비판을 차단하려 저지른 행악질이다. 진나라는 효공 (孝公) 이래 법가(法家)로 부국강병에 성공한다. 전국 7웅 가운데 최약체였던 변방의 진나라를 강성대국으로 인도한 장본인은 상앙(~ 기원전 338)이었다. 그의 행적은 사마천의 ‘사기열전’ 가운데 ‘상군열전’에 빼곡하다.

상앙은 가혹하리만큼 엄격하게 법을 집행하다가 효공의 죽음과 함께 거열형(車裂刑)으로 생애를 끝막음한다. 그의 죽음을 재촉한 것은 그가 제정한 법령이었다. 통행증이 없으면 손님과 함께 객사(客舍)의 주인이 벌을 받는 연좌제를 만들었던 상앙. 자신의 발목에 스스로 족쇄를 채운 비운의 개혁가 상군. 사마천은 상군의 비참한 최후를 각박한 천성에서 찾았다. 인간 위에 군림한 포악한 법령제정과 실행자의 최후를 경계한 것이다.

진시황 ‘정(政)’은 분서를 하되 의약, 점복 (占卜), 농서분야의 서책은 태우지 않았다. 국가의 경제적 기반인 농업에 긴요한 서책과 백성의 질병과 건강관련 서적, 국가 중대사를 논의할 때 필수적인 복서(卜筮)관련 서적, 예컨대 ‘역경’ 같은 서책은 온전히 보존했다. 자신의 정치적 기획과 실행에 반대하는, 말만 많은 유생(儒生)들의 사유와 인식의 기반이 된 서책을 진시황은 공리공론으로 몰면서 관련 서적을 불태우고, 선비들을 생매장한 것이다.

2019년 가을학기부터 강사법이 전면적으로 실행된다. 전임정권들이 뜨거운 감자로 인식하여 네 번씩이나 ‘폭탄 돌리기’ 식으로 미루고 미뤘던 강사법.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시대적 요청이라는 사명의식에 기초하여 강사법을 미루지 아니하고 실행하기로 한 것이다. 학기 중에만 강사료를 받고, 방학 기간에는 무일푼으로 지내야 했던 강사들의 물질적 보상과 최소한의 교원 신분 보장을 골자로 한 내용의 강사법 시행이 목전에 이른 셈이다.

나는 원칙적으로 강사법 시행에 적극 찬동한다. 강사와 교수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간극(間隙)의 심연을 오래 보아온 사람으로서 강사법은 강사를 위한 작지만 단단한 디딤돌로 작용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가와 대학당국이 강사법 시행에 따른 재정문제를 논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학기부터 경향각지(京鄕各地)의 크고 작은 대학들이 강사 목줄 조르기에 들어갔다. 강사들의 대량해고가 목전에 있다.

올 가을에 대학이 선발하는 강사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강사들은 창졸간(倉卒間)에 실업자로 전락하게 된다. 강사법에 따르면, 시간강사 1인에게 최소한 2과목을 부여해야 한다. 따라서 기존에 대학에서 1과목만 강의했던 강사들의 밥줄은 자동적으로 끊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문제에 직면하여 교육부도, 대학도 명쾌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야기하는 결과는 불을 보듯 자명하다. 진보적인 총장이 들어선 상지대, 성신여대, 평택대 같은 대학은 기존의 강사들을 유지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그나마 실낱같은 희망을 주고 있다.

“진리탐구의 도량인 대학이념을 구현하고, 학문후속세대의 연구를 위해 재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강사고용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긴 장마 끝에 찾아든 청량한 빗줄기이자 감로수처럼 보인다. 세계교역 7위이자 경제규모 13위라는 나라에서 미래의 동량(棟梁)을 키워내는 강사들의 물적 기반을 마련하지 못하는 국가의 실체가 허망하다. 봉건시대 절대군주 진시황은 지식인 입막음용으로 분서갱유를 실행했다. 금전이 최고의 가치인 후안무치의 사회에서 강사를 물질적 곤경에 빠뜨리는 것은 그들을 생매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강사를 살리고 대학을 학문의 공론장으로 일으켜 세우는 노력이 화급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