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신화의 지리적 배경과 지명

연오랑세오녀 일월신화의 명증(明證)은 앞의 문헌자료 외에도 포항 지역의 특성을 밝혀주는 연(영)오·세오의 인명과 근기국, 근오지(斤烏支), 오천, 일월·영일·도기야·일광·세계·夫山(부산 또는 扶桑)·광명 등 해와 달, 해맞이, 빛을 상징하는 밀집 분포된 지명을 통해 밝힐 수 있다.

연오랑세오녀 신화가 없었더라면 일월·빛과 관련된 수많은 인명·지명의 역사적 배경을 온전히 구명할 수 없고, 반면에 이러한 명칭들이 남겨지지 않았다면 연오랑세오녀 신화의 지리적 배경을 구명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두 가지는 ‘一 즉 二’ ‘二즉 一’로서 서로의 정체성을 보완하고 밝히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1. 영일현과 도기야

《삼국유사》에서 하늘에 제사지낸 곳을 ‘영일현 또는 도기야’라고 한 것에 대해 필자는 넓게는 영일현(당시의 근기국과 근오지현의 영역), 좁게는 도기야를 지칭한 것으로 보았다.

선사시대부터 사용되었을 두 명칭 중 영일은 근기국 수립시의 치소 명칭과 신라 편입후 고을명인 근오지·오천·오량우·임정 등의 명칭으로 변하였으나, 도기야는 초기와 같은 ‘해돋는(크게 비는)’ 신성한 들(野)의 이름, 제장명(祭場名)으로 오랫동안 불리워지다가 점차 마을이 형성되어가면서 마을명으로 변천했다고 본다.

2. 일월지, 천제당, 연오랑세오녀의 거주지 ‘당평’(塘坪)마을

현재 일월지는 오천 해병부대 내에 소재하고 있으나, 본래는 도기야 지역에 속해 있었다. 주위보다 높은 언덕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저수지로서 주변의 여러 작고 큰 들을 끼고 있어서 비록 바닷가 지역이지만 일찍부터 벼농사를 짓는데 큰 도움을 준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일월지의 못 위’가 어디인가 하는 점이다.「일월지 위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해석을 좀더 폭넓게 하여, 일월지 못둑 위 가까운 지점에서만 제천지나 제당을 찾지 않고, 좀 떨어진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되어, 연오랑세오녀가 살았던 세계동의 당평 마을이 제천지와 일월사당이 있었던 지역으로 보고자 하였다.

세계동은 ‘당평(안마실, 안마을)’, ‘중흥’, ‘등위(신흥)’, ‘원세계’, ‘장터’ 등의 자연부락을 합쳐 이루어졌다. 이 동네에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천제당(天祭堂)’이 있어서 매년 정월 초 정일(丁日)에 연오랑·세오녀 일월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당집 내부 앞 벽면에는 부부처럼 보이는 남녀가 서로 마중하는 시늉을 하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면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이곳이 과거 천제당 자리였으므로 아마도 연오랑세오녀 부부를 상징한 그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천제당이 있었던 당평마을에서 동해바다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길목 언덕에 ‘당옆’이란 자연부락이 있다. ‘당옆’마을에는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다. 바로 이 당옆마을에 연오랑세오녀가 집을 짓고 살았다고 전한다. 마을 이름의 유래도 연오랑세오녀의 집인 ‘당(堂)옆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3. 연(영)오·세오와 삼족오

포항지역의 일월과 관련된 명칭 중에 ‘오(烏)’자가 든 지명인 斤烏支·烏良友·烏川·斤烏兄은 삼족오태양(일월)을 상징하는 양곡(暘谷:해가 가장 먼저 돋는 곳)의 고을명이다. 延烏와 細烏 역시 삼족오태양(일월)을 상징하는 인명이다.

해 속의 세발 까마귀 삼족오(日中三足烏)는 달 속의 두꺼비(月中蟾?)와 함께 쌍을 이루고 있다. 삼족오는 음양론에 따라 해의 상징으로 양의 뜻이고, 두꺼비는 달의 상징으로 음의 뜻이다.

이러한 인명과 지명들은 영일만 양곡이 고대 한민족 문명권의 삼족오태양신화가 이동 전승된 귀착지로서 한국의 대표적 일월신화의 성지임을 밝혀주고 있다.

천손의 나라 한민족의 태양숭배사상과 조류숭배사상의 연합토템으로서의 우주관, 일월의 음양조화사상 및 천제적 제의에 대한 종합적인 인식이 상징화되고 체계화된 것이 삼족오라 할 수 있으며, ‘하느님숭배’·‘태양숭배’·‘삼신(三神:환인·환웅·단군)숭배사상의’ 상징적 표현양식의 하나임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연오랑세오녀 신화의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월지정(日月之精)이라는 의미와 함께 일월신화의 이동 경로에 나타난 삼족오의 ‘烏’자가 든 인명이 주목된다.

연오랑세오녀는 일월지정의 양오(暘烏)이며, 천강지자(天子) 왕(태양)의 안내자임을 말하고 있다. 고구려 시조 주몽의 오이(烏伊), 백제의 시조도 오간(烏干) 등의 보필로 나라를 세웠다.

그러므로 연오랑과 세오녀도 근기국과 신라의 왕을 보필하는 지배세력의 유력한 인사(사제자,왕족, 귀족, 고급기술자 등)로서 태양을 상징하는 왕을 대신하여 태양의 빛을 온 나라와 백성에게 안내하고 밝히던 높은 직분의 인사였을 것이다.

삼족오 문양은 고구려의 벽화 뿐만 아니라 1986년 익산(益山) 입점리(笠店里) 백제고분의 금동관에서도 발견되어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지난 1985년 출토된 순흥읍내리 고분벽화에서도 양광(陽光) 즉, 양수지조(陽燧之鳥)와 흡사한 삼족오의 전신(前身)을 상징하는 일상(日象)이 발견되었다.

신라지역인 경북 동북부의 영풍·안동·봉화·청송·울진·영덕·영일·영일지역에서도 고구려 지명이 나타난 점으로 보아 상당한 기간 고구려의 세력이 이들 지역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출토된 삼족오태양 관련 유물 연구와 지금까지 살펴 본 지명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의 지리적·역사적 특성 구명을 종합해 볼 때 우리 나라 일월신화와 삼족오태양신앙의 종착지인 포항 영일만 지역에도 이와 같은 내용을 증명할 수 있는 유물이 출토될 것임을 기대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