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자녀가 독립하여 집을 떠난 뒤에 부모나 양육자가 경험하는 외로움과 상실감으로 인한 슬픔을 ‘빈둥지증후군’ 또는 ‘공소증후군(空巢症候群)’이라 한다. 태어나서 성인이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현상이나 자녀가 둥지에서 떠나는 것은 부모의 삶이 완전히 재조정되도록 만들기 때문에 부모 입장에서는 목표상실과 우울을 경험할 수 있다. 현재 우리사회는 성인이 된 자녀들의 독립 시기가 점점 늦어지고 있다. 또한 결혼 후 어머니에게 자녀의 양육을 의존하는 등 한 집에서 같이 살지는 않더라도 실질적인 독립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유로 ‘캥거루족’이니 ‘연어족’이니 하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명문장가인 사숙재 강희맹은 자식교육이 특별하였다. 성종의 명에 따라 서거정이 편찬한 ‘사숙재집(私淑齋集)’에 ‘훈자오설(訓子五說)’이 실려 있다. 이 글은 그가 자식을 교육하기 위해 우화 형식으로 쓴 연작 수필 다섯 편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인 ‘도자설(盜子說)’은 도둑의 자식교육을 인용한 것이다.

내용인 즉, 도둑이 그의 자식에게 도둑질에 관한 모든 기술을 가르쳤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아들은 자기 재주가 아버지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번 도둑질마다 반드시 먼저 들어가서 나중에 나왔으며 귀중한 물건만 훔쳤다.(중략) 하루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기 기술이 더 뛰어나다고 뽐내자 아버지는 ‘지혜란 배워서 성취하는 데서 막히고, 스스로 터득하는 데서 넉넉하게 된다. 너는 아직 멀었다.’라고 하자 아들은 ‘도둑의 도는 재물을 훔치는 것으로 공을 삼습니다. 나는 늘 아버지보다 공이 배나 되지요. 나이 또한 젊으니 아버지 연세가 되면 당연히 특별한 기술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하자 아버지는 ‘한 번이라도 차질이 생기면 재앙이 따른다. 찾은 자취가 없고 임기응변하여 막힘이 없는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야 한다.’ 라고 훈계해도 아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도둑은 아들을 보물창고에 들어가게 한 뒤 밖에서 문을 닫고 소리를 질러 주인에게 알렸다. 주인이 도둑을 쫓아가다 돌아와서 보니 자물쇠가 그대로 잠겨 있으므로 안으로 들어가자 밖으로 나올 길이 없었던 아들은 손톱으로 긁어서 쥐가 물건을 쏘는 소리를 냈다. 주인이 쥐를 쫓아내려고 등불을 켜고 창고 안을 살펴보는 순간 아들이 빠져나와 달아나자 주인집에서 뒤를 쫓았다. 궁지에 몰린 아들은 연못을 돌아 달아나면서 돌을 물에 던졌다. 쫓던 사람들이 도둑이 물에 빠진 줄 알고 허둥대는 틈에 무사히 빠져나와 돌아올 수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를 만나 그 행위를 원망하지만 도둑이 말하길 ‘이제 앞으로 너는 마땅히 천하를 홀로 주름잡게 될 것이다. 사람의 기술이란 남에게서 배운 것은 푼수에 한도가 있고, 마음에서 터득한 것은 응용이 무궁하다. 하물며 곤궁하고 답답한 상황은 사람의 의지를 견고하게 하고 사람의 인덕을 완숙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냐! 내가 너를 곤궁에 빠뜨린 것은 바로 너를 편안하게 하기 위함이고, 내가 너를 함정에 빠뜨린 까닭은 너를 건져주기 위함이었다. 어려움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네가 어찌 쥐의 시늉을 하고 돌을 물에 던지는 기묘한 꾀를 낼 수 있었겠느냐? 이렇듯 의식의 근원이 한번 열리면 다시는 헷갈리지 않을 것이다.(하략)

위 글에서 도둑은 아들을 궁지에 몰아넣음으로써 단편적인 기술을 엮어낼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도록 이끌어냈다. 대학진학을 위해 수능시험을 지상명제로 생활해온 수험생과 부모들은 시험이 끝난 후 허탈감과 상실감에 빠지기 쉬우며, 특히 어머니들에게는 빈둥지증후군이 찾아오기 쉽다. 학생들은 그동안의 지식을 꿰고 엮어서 새로운 쓸모있는 지식으로 승화시키는 가치관과 통찰력이 필요하다. 부모들도 오직 자식을 위한 헌신에서 성장하면 떠나야 한다는 일상의 진리를 슬기롭게 받아들여 스스로의 풍요로운 삶의 덕목을 꾸미는 게 건강한 가정과 사회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