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서예가
▲ 강희룡서예가

조선 전기의 문신인 서거정은 해박한 지식과 깊은 식견을 가지고 우리나라의 사적(事蹟)을 널리 채집해 위로는 조종(祖宗)의 창업으로부터 아래로는 공경대부의 도덕과 언행, 문장정사(文章政事)와 국가의 전고(典故), 여항풍속에 관한 것 등 국사에 기록되지 않은 사실을 격식에 매이지 않고 간결하면서도 정연한 필체로 기술한 한문 수필집인 필원잡기(筆苑雜記)를 편찬했다.

이 필원잡기에 주자학을 연구하고 성리학에 뛰어나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시조로 추앙받으며 지절(志節)과 학덕이 높은 고려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포은 정몽주 선생의 일화를 적은 포은삼과(圃隱三過)가 수록되어 있다.

내용은 어떤 이가 포은에게 ‘선생님께서는 세 가지 과실이 있다던데 그것을 알고 계십니까?’하고 물었다. 그 첫 번째 과실은 술을 마실 적에 제일 먼저 들어가 맨 나중에 파하니 술 마시는 것이 지루하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그러자 포은은 ‘젊었을 때 희귀한 술 한통 얻으면 친지들과 즐기려고 그런 일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다음 두 번째 과실은 색(色)에 초연하지 못하다고 남들이 말한다는 것이었다. 이 역시 시인하며 ‘색 좋아하는 건 사람의 상정이요, 공자도 착한 일을 색 좋아하듯 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라고 말했다.

마지막 세 번째 과실로 당물(唐物·중국물건)을 사는데 무심하지 못하다고 남들이 말하더라는 것이었다. 이에 포은은 ‘자녀가 많고 혼인의 예식에 당물을 쓰는 게 시속(時俗)인데 유독 나만이 그를 면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한다.

이 내용을 엄밀히 살펴보면 이 삼과를 반드시 과실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은 포은을 성인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과실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선비의 곧은 절개나 학덕이라는 한 인간의 일부분을 위해 그의 모든 인간의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포은삼과는 옛 선비들이 그의 학덕 때문에 인간성이나 인간의 조건을 상실하고 살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으로 자주 인용되어 왔다.

만약 사람들에게 콩과 팥의 꽃빛깔을 물으면 대개 콩꽃은 노랗고 팥꽃은 붉다고들 한다. 이는 열매의 빛을 꽃까지 확대시켜 인식했기 때문이다. 실제는 팥꽃이 노랗고 콩꽃은 붉다. 조선 성종 때 ‘악학궤범’을 편찬한 대표적인 음악가로 알려져 있는 성현도 ‘한새 꼬리의 색깔을 물으면 사람들은 모두 검다고 하는데 이는 한 새의 두 날개가 꼬리를 덮고 있어서 검게 보인 것뿐이지 사실은 하얗다.’고 말하여 인물이나 사리의 어느 일부분을 전체로 확대 인식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다.

원래 조선은 유가(儒家)의 선비정신을 근간으로 정치, 사회, 문화면에서 매우 탄탄하고 유례없는 긴 역사를 이룩한 국가였다. 그러나 필연적인 흥망성쇠의 이치로 쇠퇴의 길을 걸었다. 구한말을 거쳐 국권을 강탈당하고, 해방 후 미군정시대와 동족상잔, 그리고 근대 산업화 시절을 지내왔다. 그동안 우리는 쇠퇴의 원인을 유교의 선비정신에 떠넘겨 낡고 고루한 것으로 평가절하 하고 그 역사까지도 외면해버렸다. 이는 우리가 선비정신을 내면 깊숙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일부 부정적인 외형만을 가지고 평가하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성과 지상주의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과정의 모든 어두운 면을 미화시켜 버렸다. 정치 분야에서 국회는 내년 예산안 심사를 법정시간을 훨씬 넘긴 후 회의록도 없이 밀실 회의를 통해 후안무치한 졸속심사로 막을 내렸다.

각 정당들은 오직 그들만의 이익을 위한 선거제도 개혁에 기를 쓰고 있다. 그래도 조선의 붕당은 선비정신을 바탕으로 전개되었지만, 지금 이들의 정치는 국민에게는 대욕비도(大慾非道·욕심이 많고 무자비함)한 적폐로 변하여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판단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