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향

낡은 유모차에 접은 박스를 싣고

사내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크게 혹은 작게 접혀진 무게를

유모차 어린 힘이 기우뚱 받치고

성급히 건너려는 철없는 바퀴 애써

누르고 있는 손등이 위태롭다

허리 곧추 세우고

꽉 채운 박스 속같이 당당했던 시절

속의 것을 다 비워 낸 채 거리로

내몰리기 전까지

세상은 언제나 거뜬히 들어 올릴 수

있는 박스처럼 만만했을 것이다

석간신문 한 귀퉁이

어깨 처진 실직 가장들과 함께

그의 이름 새겨진 빛나는 자개

명패도 날짜 지난 신문처럼 폐기

처분되었으리라

유모차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간

아이들이 밀고 가는

푸른 신호등 건너 세상

굽은 허리 펴고 오래 바라보는

사내

우리 시대의 서글픈 풍속도 한 장을 본다. 시인은 횡단보도에 서서 낡은 유모차에 접은 박스를 싣고 가는 사내를 보고 한 때는 빛나는 자개명패 앞의 당당하던 사내를 떠올리다가, 이제는 지난 신문처럼 폐기된 사내의 서글픈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거뜬히 들어올릴 수 있을 만큼의 의욕과 패기와 힘은 사라지고 결핍과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 땅의 많은 실직자와 빈민들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서글픈 현실을 바라보는 시인의 슬프고 안타까운 눈을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