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유교사회에서는 본래 바른 생활습관과 품성을 배양하기 위한 조기 인성교육을 중시했다. 그래서 초등교육 단계의 교재로 사자소학(四字小學)이나 동몽선습을 비롯해 소학 등을 권장했다. 사자소학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열 살 이전에 익힐 수 있는 책으로 반드시 배워서 익혀야 할 생활규범과 철학이 실려 있는 초학서이다. 동몽선습은 오륜을 정리해 덕행함양에 목적을 두었으며, 천자문을 익히고 난 후 어린 학동들이 배울 초급교재로 중종 때의 학자 박세무(1487~1554)가 저술한 것으로, 1670년(현종11)에 간행됐다. 당시에는 지식교육도 획일적이 아니라 개인의 수준과 능력에 맞추어 단계적으로 행해졌다. 사회 전체 차원에서는 지위나 부는 그리 중요시되지 않았고, 인품과 덕망이 높은 인사가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그려졌다. 국가에서는 개결(介潔)한 성품과 행실을 갖춘 선비에게 청백리라는 명예를 부여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신익황(1672~1722) 선생의 ‘극재집(克齋集), 가숙잡훈(家塾雜訓)’은 가숙(서당)의 교육에 대한 견해를 적어 놓은 글이다. 전통사회에서의 서당은 오늘날처럼 공적인 초등교육 기관이 없던 시대에 마을이나 집안 단위로 어린 자제들을 가르쳤던 장소이다. 그런데 조선의 교육이 후대로 이어오면서 성공과 출세를 위한 선행적 지식 축적과 과거 시험에 대비한 작문 연습이 초등교육 단계로까지 퍼져있는 것을 간파한 신익황은 이런 현상이 부모의 욕심에서 기인한다고 진단했다. 부모들이 자녀들의 특성과 능력에 상관없이 고강도의 교육을 시키려 들고 오직 훗날의 성공과 출세를 위한 목적을 조기교육에 두고 있던 것이다.

평생토록 교육에 종사했던 신익황의 눈에 비친 당시 초기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그는 학업에 대한 과도한 압박은 자녀를 위축시키고, 의욕을 꺾으며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해쳐 역효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아이의 수준과 성향에 맞춰 가르치기를 권장하고 지식보다 예절과 인성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는 자식이 겨우 말을 배우면 대구(對句)를 짓도록 가르친 후 학교에 들어가면 과거시험을 본분으로 삼고 학행을 겉치레로 삼게 됐다. 종일 익히는 것이 모두 이욕(利欲)의 논리였고, 효제충신(孝悌忠信) 등은 뒷전이 되다보니 고을에 미풍양속이 없어지고 세상에는 훌륭한 인재가 없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교육풍토 때문이었다.

각 가정에서 부모의 언행은 자녀들이 그대로 학습하는 것을 우리는‘가풍’이라 말한다. 신익황이 진단한 당시 부모들의 자식출세에 대한 과도한 욕심은 자식들의 정서를 황폐하게 만들어 그릇된 교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이러한 교육은 청소년기에 발생하는 범죄행위로 나타날 수 있으며, 성인범죄로 이어지거나 모든 생애에 걸쳐 바람직한 사회일원으로서의 역할을 해 나가는데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잠재성이 크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청소년 범죄를 비롯한 분노형 범죄, 묻지마 범죄는 개인의 문제만으로 봐서는 안 되며 갈수록 증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제도적 장치는 물론 사회 환경과 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한 교육과 노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육은 바로 자연에서 생물학적인 존재로 태어난 한 사람을 사회에서 문화적인 한 주체로 빚어내는 일이다. 인류가 축적해온 지혜와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토대로 자기 삶을 자기가 스스로 만들어가도록 피교육자를 길러 내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다시 말해, 교육은 단순히 과거의 지식, 또는 기존의 체계화된 지식을 전수하는 일이 아니라 피교육자가 과거의 지식을 바탕으로 삼아 주체적으로 자기세계를 긍정적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잠재적인 역량을 계발하게 하는 일이다. 조기 인성교육 없이는 아무리 법과 제도를 고쳐도 흉악한 범죄예방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인성교육이 무너진 사회는 더 이상 가치는 없으며 병들어가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