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폭적인 지원 약속하더니
평창올림픽 끝나자 헌신짝 취급

▲ 지난 2월 20일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예선 대한민국 대 핀란드의 경기에서 대표팀 선수들이 5대2로 패한 뒤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DB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의 역사적인 올림픽 첫 골은 조민호(31·안양 한라)의 손에서 나왔다.

조민호는 올해 2월 15일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체코와 조별리그 1차전에서 1피리어드 7분 34초에 한국의 올림픽 첫 골을 터트렸다.

올림픽 개최국 자동 출전권 때문이 아니라 실력으로도 한국이 당당히 올림픽 무대를 밟을 자격이 있음을 보여준 조민호의 나이는 만으로 31살이다.

국군체육부대(상무)가 창단되지 않았다면 진작에 은퇴할 나이다.

‘키예프의 기적’으로 불리며 한국이 사상 최초로 월드챔피언십에 올라가는 쾌거를 이룬 2017년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 디비전 1 그룹 A(2부리그)도 상무 출신 선수들의 활약이 빛났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김기성(3골 1어시스트), 김상욱(1골 3어시스트), 박우상(2어시스트), 조민호(2어시스트), 이돈구(1어시스트) 등의 눈부신 활약 속에 2위를 차지하며 월드챔피언십 진출의 기적을 일으켰다.

상무가 없었다면 김기성(33), 김상욱(30), 박우상(33), 이돈구(30)는 일찌감치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을 터다. ‘키예프의 기적’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의 30대 남자 아이스하키 선수를 볼 수 없게 됐다. 상무가 내년부터 1차 모집 대상에서 아이스하키를 비롯해 빙상, 스키, 봅슬레이, 스켈레톤, 루지 등 동계 종목을 제외했기 때문이다.

한국 아이스하키계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는 다른 인기 프로종목과 달리 저변이 열악해 상무가 폐지되면 선수 생활 유지가 어렵다.

선수로서 한창나이에 병역 의무를 위해 빙판을 떠난 선수들이 2년여의 공백을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

공익요원으로 병역을 마친 후 복귀한 선수도 몇 명 있지만, 아이스하키 선수에게 입대는 곧 은퇴를 의미했다. 이로 인해 대표팀 유지도 어려웠다.

이는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과거 국제무대에서 고전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였다.

한국 아이스하키의 숙원으로 꼽혀온 상무가 창단한 것은 2012년 7월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방부는 평창올림픽 성공 개최를 위해 상무에 동계 종목 3개(빙상, 스키, 아이스하키)를 추가, 2019년 전반기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가장 큰 걸림돌을 해결한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2012년 3부리그에서 출발했던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는 올해에는 월드챔피언십, 즉 1부리그에서 뛰었다.

국제 아이스하키 역사를 통틀어 이 정도로 단기간에 1부리그로 뛰어오른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귀화 선수로 인한 전력 보강 효과도 컸지만 2012년 상무 창단으로 인한 국내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 및 유지가 결정적인 동력이 됐다.

문체부와 국방부는 상무 아이스하키의 필요성에 공감해 평창올림픽 이후에도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인원(20명 안팎)으로 팀을 운영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상무는 2017년 5월 1일 안진휘, 신상훈, 박계훈, 안정현, 전정우(이상 5인은 모두 국가대표), 조석준이 입대한 이후 아이스하키 선수 모집을 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아예 아이스하키 선수를 뽑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상무 아이스하키팀은폐지 수순에 들어갔다.

비용 문제 때문은 아니다. 지난 5년간 상무 아이스하키는 실질적으로 대한아이스하키협회와 한라, 대명의 돈으로 운영했다.

대신 상무는 국내 대표적인 인기 스포츠인 야구와 축구 지원자는 대폭 늘리기로했다.

올해 초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을 두고 뜨거운 논란이 인 적이 있다.

단일팀 구성으로 한국 대표팀의 일부 선수가 경기에 뛰지 못하게 되자 비판적인 목소리가 커졌다.

당시 정부는 우리 여자 대표팀 선수들을 만난 자리에서 불만 사항을 접수한 뒤 아이스하키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대표팀의 요구사항 중 하나가 상무 아이스하키팀 유지였다.

하지만 평창올림픽이 끝나자 정부는 지원 약속을 외면했다. 한국 아이스하키는 오랜 무관심 속에서도 괄목할만한 선전을 거듭했지만, 겨우 피어난 희망의 싹이 잘릴 위기에 처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