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
▲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

지난 11월 초하루 중국 강소성 남경대학교에서 낯선 장면이 포착된다. 100여 명의 대학생들 앞에서 연설하던 몇몇 학생이 사복차림의 건장한 사내들에게 속절없이 제압당한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봉변을 당한 학생들은 ‘마르크스주의 열독(閱讀) 연구회’ 소속으로 마르크스의 저작을 읽고 토론해 왔다고 한다. 사회주의 종주국을 자처하면서 강성대국의 길을 걷고 있다는 중국에서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를 선전하고 싶을 뿐이고, 습근평 주석의 부름에 호응했을 뿐이다. 학교는 왜 우리를 이렇게 대하는가!”

이것이 제압당한 학생의 연설일부다. 남경대학 당국은 5년 전 창립돼 철학과 부속 모임으로 활동해온 연구회의 등록갱신을 거부함으로써 연구회를 ‘미등록단체’로 만들어버린다. 그러자 연구회 학생들이 대학의 정치적 결정권을 가진 후진보 서기와 면담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내걸면서 시위에 돌입한 것이다.

학생들은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물리적 폭력에 저항하지 못했다. ‘사복’들은 중국정부의 공안 소속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문제는 남경대학은 물론 북경대학과 인민대학의 마르크스주의 학습모임도 탄압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자발적으로 연구하고 보급하는 학습모임을 억압하는 사태가 백주대낮에 일어나고 있다니?!

분석가들은 이번 사태가 지난 5월 이후 독립노조 결성문제로 노사갈등이 이어져온 ‘자스사태’와 관련된 것이라 보고 있다. 중국 명문대의 마르크스주의 학습모임 소속 대학생들이 7-8월에 문제의 진원지인 광동성 혜주(惠州)에 위치한 용접기 제조업체 ‘자스’를 찾아가 노동자 시위에 동참하면서 ‘노동자 권익보호’ 등의 구호를 외쳤다고 한다. 그러자 경찰은 8월 24일 관련 학생 50여 명을 연행하고 모임을 해산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지난 2018년 5월 5일은 카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되는 날이다. 이날 습근평 주석은 “마르크스주의는 당과 국가의 지도이념으로 사상의 무기를 제공하고 중국을 낡은 동방대국에서 인류사상 전례 없는 발전의 기적을 이루게 했다”고 마르크스 이념을 격찬한 바 있다. 나아가 중국정부는 젊은이들이 경박한 서구사상에 물드는 것을 경계하기도 했던 터였다. 이런 차원이라면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고 열독하는 모임은 적극 권장해도 부족할 판이다.

등소평의 도광양회와 강택민의 화평굴기를 지나 습근평의 돌돌핍인으로 대국굴기를 지향하는 중국이 마르크스주의를 억누르는 것은 괴이한 정경이 아닐 수 없다. 사태의 핵심은 중국이 대국굴기로 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과도한 빈부격차와 지역격차 문제에 좌파 청년들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우파당국과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평한 분배, 즉 ‘균분’이야말로 중국이 자랑해온 대표적인 덕목 가운데 하나다. 그것이 심대하게 훼손되고 있는 당대중국.

해안지역과 내륙지역의 빈부격차, 도시와 농촌의 격차, 공식적인 부문과 비공식적인 부문(지하경제)의 격차같은 삼중(三重)의 격차로 신음하는 중국. 극심한 환경오염과 자원고갈같은 문제도 중국의 또 다른 아킬레스건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열렬한 청년좌파의 목소리가 쉬이 잦아들 것 같지는 않다. 이것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중국의 모순이자 민낯이다. 여기에 중국과 미국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경제전(經濟戰)이 덧붙여지고 있는 셈이다.

압축-고도성장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중국의 향후변화 과정이 궁금하기 짝이 없다. 우리처럼 중국도 민주주의와 경제적인 번영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그것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