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
▲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

생명 가진 것을 죽이는 일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기르던 화초나 수목 하나 죽어도 가슴이 서늘한 법이므로. 하물며 움직이는 생명체의 목숨을 앗아가는 행위는 대단한 결단이나 용기를 필요로 한다. 얼마 전에 어깨 위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 있어서 필시 ‘모기려니’ 하고 잡아 죽였다. 아뿔싸?! 그것은 모기가 아니라, 작은 거미였다. 성마른 판단과 행위로 거미의 생목숨을 빼앗았으니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사람마다 꺼려하는 생명이 있다. 나는 쥐와 뱀이 불편하다. 파리와 모기, 바퀴벌레와 돈벌레(그리마), 지렁이와 노린재도 반갑지 않다. 하지만 지렁이나 그리마 혹은 거미 등속은 웬만해서 죽이는 법이 없다. 축축하고 규모가 큰 지렁이는 삽이나 호미로 녀석의 본향(本鄕)인 흙이나 풀 속으로 던져준다. 모기와 파리같은 골치 아픈 족속을 해결해주는 거미는 아예 죽일 생각조차 해본 적 없다. 그런 거미를 무심코 죽였으니!

직접적인 살해는 아니더라도 에둘러 상대방을 죽이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 소설가 조리스 위스망스(1848-1907)는 ‘거꾸로’(1884)에서 이렇게 쓴다.

“살로메는 책임감도 감정도 없이 마치 고대 그리스 신화의 헬레네처럼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 바라보는 모든 것, 만지는 모든 것을 타락시키는 짐승이었다.”

구스타프 모로가 그린 ‘살로메’ 연작을 보면서 그녀의 파괴적인 양상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소설가는 한 걸음 나아가 살로메를 ‘기괴하고 냉담한 짐승’이라고 비난한다. 고혹적이고 음란한 춤으로 의붓아비 헤롯을 기껍게 하고, 그 대가로 어미 헤로디아와 공모해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했던 살로메. 살로메는 망나니의 칼을 빌려 요한의 목을 친다. 차도살인(借刀殺人)이지만, 그것의 근저에는 살로메의 파괴적이고 냉담하며 음산한 육욕과 살인본능이 시커멓게 꿈틀거린다. 두려운 일이다.

‘일리아스’에서 다루는 트로이 전쟁의 발단은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가 트로이의 파리스와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인 때문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읽노라면 무엇 때문에 저토록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헬레네 하나를 구출하기 위해서?! 유부녀의 몸으로 국제적인 애정행각을 벌인 헬레네를 구하려고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단 말인가?!

문제는 그 이후에 있다. 10년 전란이 전개되는 동안 헬레네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파트로클로스와 헥토르, 아킬레우스같은 영웅들이 스러져나갈 때 그리스 최고의 미인은 어디서 무엇으로 소일하고 있었을까?! 그래서 위스망스는 헬레네를 살로메와 동렬에 올려놓고 날카로운 비난의 화살을 쏘았을 것이다. 죽음의 서약을 하고 헬레네에게 청혼했던 숱한 그리스 청년들의 열망을 냉담한 그녀는 간단히 무시해버린 게 아니었을까!

지난 10월 14일 일어난 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으로 한국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잔혹범죄 용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라는 국민들의 빗발치는 요구에 따라 피의자 얼굴도 언론에 공개된 상태다. 심신미약을 이유로 살인자를 감형해서는 안 된다는 국민청원이 100만을 넘어섰다. 일부 언론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분노범죄’의 일상화를 공론화한다. 순간적으로 ‘욱’하는 마음에 생겨나는 살인자가 1년에 400명이 넘는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한때는 ‘동방의 등불’이자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불렸던 평화애호 민족의 나라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잔인한 범죄가 차고 넘치는 나라로 전락한 것일까?! 돈과 권력의 화신이자 범죄의 무리가 권력과 돈을 독점하면서 생겨난 단면 아닐까, 생각한다. 생명의 소중함마저 백안시(白眼視)하는 살풍경한 세태교정을 이제라도 시작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