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협력해야 할 가장 중요한 국가는 한미동맹과 북미협상의 당사자인 미국이다. 북한의 핵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하고 있는 한국과 미국은 북핵 폐기에 공동이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미공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북미협상의 중재자를 자임하고 있는 한국이 협상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과의 공조가 원활하지 못하면 북한의 비핵화를 효율적으로 견인해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볼 때 한미공조의 균열이 우려된다. 미국 폼페이오(M. Pompeo) 국무장관이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된 군사분야 합의사항들이 미국과 사전협의가 없었음에 격분하면서 항의하였다는 사실이 국정감사에서 밝혀졌다. 또한 폼페이오의 북한 방문을 앞두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무기 보유목록 제출(핵신고) 요구를 보류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한국의 외교장관이 북한의 논리로 미국을 압박한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이뿐만 아니다. 강 장관은 국감에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의원의 질의에 대해 ‘5·24 조치를 해제하는 문제를 관계 부처와 검토 중’이라고 답변해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정부의 입장이 미국에 알려지자 즉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우리의 승인(approval) 없이는 대북제재 해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승인’이라는 거친 표현을 세 번이나 반복했다. 트럼프의 발언은 주권국가에 대한 ‘외교적 결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도 높은 것이었다. 이렇게 미국의 비판이 일어나자 다음 날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5·24 조치의 해제를 검토한 적이 없다”고 하면서 외교부 장관의 발언을 하룻만에 뒤집었다.

이처럼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이 남북관계개선을 서두르는 것을 마땅찮게 여기고 있다. 갈루치(Robert L. Gallucci) 전 미 국무부 북핵특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이 바라는 속도보다 더 빨리 북한과 일을 진행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하면서 “한국과 북한이 이루는 진전은 한미동맹관계에 균열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역시 같은 맥락에서 피츠패트릭(M. Fitzpatrick) 전 미 국무부 비확산담당 부차관보는 “대북제재 틀 안에서 한국정부가 할 수 있는 대북경협사업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하면서 “제재를 위반하면서까지 북한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실책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물론 한국과 미국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서 일치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양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한 방법론에 있어서도 이견(異見)이 존재할 수 있다. 한국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하여 비핵화를 견인하고자 하는 반면, 미국은 제재와 압박을 유지해야 비핵화를 이룰 수 있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한미 간 협의와 소통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한미공조에 문제가 생기면 북한은 그 틈새를 파고들 것이다. 최근 북한의 대남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판문점선언을 이행하는 데서 그 누구의 눈치를 보아서는 안 되며 모든 문제를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풀어나가야 한다”고 한미공조의 균열을 겨냥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하여 북·중·러 3국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김정은은 이미 세 차례나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의 지원을 확보했으며, 3국은 러시아에서 차관급 외교회담을 통해서 대북제재 완화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공조의 균열이 계속된다면 북한의 비핵화는 물 건너간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