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정책으로
한전 전력구입비 급증 전망
연중 24시간 공장 가동하는
철강·반도체·석유화학 직격탄

정부가 심야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어 성수기를 앞둔 철강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으로 한전의 전력구입 비용이 2030년까지 약 9조 원 늘어날 것으로 산업통상자원부가 예측하면서 심야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한전이 적자부담을 떠안으면서 계속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업용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전기로업체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4일 한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력구입비가 9조130억 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전력구입비(6조9천440억 원)보다 29.8% 늘어나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정부가 안전을 명분으로 원전 정비 기간을 늘리면서 원전이 쉬는 만큼 더 비싼 연료로 전기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원전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비용(발전단가)은 킬로와트시(kWh)당 61.96원이었지만 석탄의 발전단가는 89.45원, 액화천연가스(LNG)의 발전단가는 93.11원으로 원전의 1.5배 수준이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75% 안팎이던 원전 가동률은 올해 상반기 평균 58.8%로 낮아졌다. 이에 따라 올 상반기 발전량 중 원전의 비중은 30%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7%포인트 낮아졌다. 같은 기간 석탄 비중은 52%에서 54%로 상승했고, LNG 비중은 8%에서 13%로 뛰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전기요금 인상률을 10.9%로 전망하며 탈원전으로 인한 영향은 없다고 주장해왔다. 2003∼2016년의 실제 전기요금 인상률은 13.9%였다. 탈원전 정책이 추진된다고 해도 전기료 인상폭이 과거보다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근거가 희박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해당 전망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에 드는 비용이 30% 감소한다는 예측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다만 이 예측에는 발전소를 설치할 부지 마련 비용 등은 포함돼 있지 않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은 입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도 국토가 좁고 산지가 많은 한국의 특성이 반영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에너지 전문가는 “주변 학계, 업계 관계자 중에 탈원전, 재생에너지 확대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이 없다는 정부의 발표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일순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는 지난해 8월 자유한국당 김무성 의원실 주최로 열린 ‘성급한 탈원전 정책의 문제점’토론회에서 “전기요금이 2030년까지 230% 인상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에 불리한 한국의 입지 조건 등을 고려한 전망이다. 지금 당장은 한전이 부담을 떠안는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적자를 떠안을 수는 없다. 결국 한전이 전기요금을 인상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동안 정부는 심야시간대 전기요금을 인상하되 낮 시간대 전기요금을 인하해 기업이 추가로 부담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설명해왔다. 하지만 적자상태인 한전의 눈치를 피할 수는 없다. 산업부 관계자는 “심야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하면 연중 24시간 공장을 가동하는 철강, 반도체, 석유화학 등이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부분의 국가가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가정용의 70% 수준 이하로 유지하고 있는 반면 한국만 유독 반대정책을 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명득기자 mdkim@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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