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서예가
▲ 강희룡서예가

사회의 다양한 계층 사이에 잠재하던 갈등이 점차 노골적으로 드러나면서 특정집단의 이름 뒤에 충(蟲)을 붙여 혐오감정을 드러내는 신조어가 우리생활에 퍼지고 있다. 이 벌레 충자를 붙인 혐오신조어는 극우 성향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일베) 회원을 비하하는 ‘일베충’에서 시작됐다. 이 일베를 중심으로 남성의 여성혐오가 몇 년 전의 화두였으나, 지금은 여성들에 의한 남성혐오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이들은 메갈리아(메갈)라는 커뮤니티를 무대로 공론장을 형성하면서 그간 쌓인 남성에 대한 증오를 분출하고 있다.

현재 대표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혐오단어는 2011년 ‘일베충’이라는 표현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널리 퍼져 올해까지 블로그나 트위터에 게시된 글이 85만 건 이상 언급됐다. 메갈과 일베의 충돌 중에 강남역 살인사건 여파로 한국 남성들을 모두 비하하는 ‘한남충’이란 말을 메갈리아에서 만들었다. 지금은 월수입 200만 원 미만인 남자들을 지칭하며 올해에만 18만 건 이상 쓰일 정도로 퍼졌다. ‘개저씨’ 또한 개념 없는 아저씨를 뜻하는 혐오단어로 나이나 지위를 앞세워 약자에게 함부로 대하는 중년 남자를 의미하는데 지난해엔 8만 건 가까이 쓰였다. ‘맘충’은 엄마를 의미하는 맘(mom)에 충을 결합한 말로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엄마라는 이유로 주변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혐오의 대상이 전방위적이며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엄마 전체를 마치 사회에 해악을 주는 존재로 여기는 세태를 인터넷 커뮤니티 한두 군데만 들어가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 여성혐오는 꾸준히 있었지만 모성애마저 지금처럼 벌레 수준으로 끌어내려진 적은 없었다. ‘급식충’은 학교에서 급식만 축내고 식사 아닌 시간에는 잠만 자다 돌아오는 학생, ‘좌좀충’은 좌익좀비, ‘우꼴충’은 우익꼴통, 아이들을 버릇없이 기르는 아빠들은 ‘애비충’이라 부른다. ‘틀딱충’은 노인네들의 틀니에서 딱딱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을 비유로 노인세대를 통틀어 비하하는 표현이다. 노년층은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적 정치성향으로 인해 진보적인 젊은 세대에 대한 비판적 태도나 과도한 조언에서 빚어진 세대 간 갈등으로 해석된다. 충자는 없지만 ‘김치녀’나 ‘된장녀’는 냄새나는 김치나 된장에 비유하여 본인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명품과 사치, 허영을 가진 여성을 혐오하고 있다. 한국의 ‘사회갈등지수’는 터키 1.2, 한국 0.72, 폴란드 0.59로 OECD 국가 중 2위이며, ‘타인에 대한 관용과 존중도’는 OECD 평균이 69.9인데 한국은 45.3으로 최하위다. ‘헬조선’이란 신조어가 탄생될 만도 하다. 혐오란 자신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말을 듣는 것을 의미하기에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그 고통을 상상하기 어렵다. 사회상을 반영한 언어의 부정적 표현이 극으로 치닫는 것은 그만큼 우리사회 내부에 정치, 사회적 집단 갈등이 널리 퍼져있음을 의미하며, 한편으로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소득불평등 등 사회구조적 갈등이 심각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일상에 범람하는 혐오표현에 물드는 건 순식간이다. 이러한 부정적 언어들을 반성을 통해 걸러내지 않으면 일상적인 표현이 될 수 있다.

온라인공간은 사적영역이 아니라 공적영역이다. 성숙한 국민으로의 자질을 갖추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이 남만 탓하는 ‘내로남불’의 이분법적인 흑백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피해 또한 모든 국민이나 자신에게 돌아온다. 어린이들이 정상적인 언어를 배우기도 전에 부정적이며 비정상적인 언어를 먼저 습득하면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사회적 문화를 형성하게 될 우려가 크다. 특정 다수를 아무런 생각없이 혐오의 낙인을 찍는 일상이 아무 제재없이 인터넷상에 유행처럼 번지면 어린 학생들은 이것을 유희로 생각할 수 있다. 이제 혐오신조어는 우리사회의 문제점으로 자리잡았다. 사용에 있어 적절한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