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창구<br>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한여름의 해바라기 꽃은 신록의 아름다운 풍경을 더해주지만, 우리사회에 난무하고 있는 ‘권력 해바라기들’은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해바라기가 태양을 쫓아가듯이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권력을 쫓아다니는 ‘권력 해바라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연구와 교육에 전념해야 할 교수들이 선거철만 되면 경쟁적으로 선거캠프에 기웃거리며 권력의 주구(走狗) 노릇을 하는 ‘정치교수(polifessor)’들의 행태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에 뒤질세라 국가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군인들도 ‘정치군인’이 되어 쿠테타, 불법계엄령 기도, 선거개입과 민간인사찰 등 권력에 접근하기 위해 온갖 범법행위들을 자행해 왔다. 이뿐만 아니라 사회정의를 수호해야 할 검찰이 권력 해바라기가 되어 ‘정치검찰’로 전락하는가 하면, 사법 심판의 최후보루로서 권력자를 견제해야 할 대법관까지도 스스로 정치권력의 시녀가 되려고 하였다니 기가 막힌다. 게다가 권력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객관적 입장에서 공정하게 시시비비를 가려주어야 할 언론과 시민단체마저도 권력 해바라기가 돼 ‘외눈박이’ 편견들을 소리높여 질러대고 있다. 이처럼 우리사회의 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교수·장군·검사·판사·언론인 등이 보여주고 있는 ‘권력 해바라기 현상’은 참으로 심각하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가 지적한 것처럼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기 때문에 권력에 접근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사회의 ‘권력 해바라기들’은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다는 데에 있다. 그들은 당초에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들, 즉 연구와 교육(교수), 국가안보(군인), 사회정의(검사·판사·언론인) 등은 소홀히한 채 오직 권력만 쫓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가치들이 함께 존중받고 있는 선진사회와는 달리 우리는 권력만을 지나치게 선호하니 아직도 후진사회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권력 해바라기’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권력 해바라기는 이미 우리의 의식 속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에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사회의 병폐라고 할 수 있는 ‘감투 지상주의’는 우리의 가치관이 얼마나 권력 지향적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세 사람만 모여도 회장·사무국장·감사를 두는 조직을 결성한다는 우스개가 나올 정도이다.

사람의 가치는 그가 맡고 있는 ‘직위, 즉 권력의 크기’가 아니라 맡은 바 ‘직무에 얼마나 충실하고 유능한가’에 달려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교장은 교사보다 직위는 높지만 교장은 학교경영, 교사는 학생교육이라는 직무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누가 더 가치 있는 일을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권력의 크기’가 ‘도덕의 크기’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권력’과 ‘도덕’은 반비례할 위험성이 훨씬 더 크다. 최고의 권력을 가졌던 두 전직 대통령들이 지금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권력을 서열화하여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되며, 이를 위하여 ‘올바른 가치관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람은 오직 ‘한 번 뿐인 인생’을 가치 있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마땅하다. 특히 돈·권력·명예를 가진 사회지도층은 반드시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정신을 가져야 한다. 이미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권력 해바라기’가 되어 추태를 벌이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가 비록 ‘자신의 삶을 인류구원에 헌신한 예수나 석가’는 되지 못하더라도, 의미없이 권력을 쫓아다니다 죽는 ‘불나방’이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