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
▲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

기원전 6세기 중엽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키루스가 동으로는 인더스, 서로는 이집트에 이르는 제국을 건설한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인류는 싫든좋든 제국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프로-유라시아를 거점으로 살아온 구대륙 거주자들에게 세계제국은 오랜 세월 숙명처럼 작용했다.

세계사에서 최대제국을 형성한 대원제국(1271∼1368)을 끝으로 거대 육상제국은 종언을 고한다. 이른바 ‘지리상의 발견’ 내지 ‘대항해시대’를 기점으로 유럽의 팽창이 가속화하면서 근대가 얼굴을 내민다. 수천 년 지속된 동양과 서양의 팽팽한 이항대립은 19세기 이후 유럽의 우위로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그럼에도 제국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1850년부터 1914년까지 대영제국은 세계 최강이었다. 1851년 제1차 만국박람회에서 제국의 위용을 과시한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 확고부동한 최강제국의 위상을 유지한다. 그러나 제2차 대전 이후 대영제국은 위축되고 미국과 소련을 축으로 하는 정치지형이 만들어진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득세와 소련의 몰락으로 양키제국의 일극시대가 개막한다. 미국 앞에는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는 무풍시대가 도래한 듯했다.

1840년 아편전쟁과 1850년 태평천국의 난 등으로 극심한 내우외환에 시달리던 청나라는 급기야 1911년 신해혁명과 이듬해 중화민국으로 막을 내린다. 식민지 전락위기를 가까스로 넘긴 중화세계는 1949년 공산당 정부가 들어섬으로써 새 역사를 만들어가는 듯했으나, 1966년부터 문화대혁명의 거대한 후퇴를 경험한다. 모택동 사후 가능해진 실용주의 노선으로 중국은 등소평의 ‘도광양회’를 거쳐, 호금도의 ‘화평굴기’를 지나, 습근평의 ‘돌돌핍인’에 이른다.

중국은 2010년에 일본을 누르고 국내총생산 세계 2위로 도약한다. 2017년 기준으로 보면 미국의 국내총생산이 19조 달러, 중국은 12조 달러로 두 나라 총합은 세계 총생산의 40%에 이른다. 21세기 초반 세계최강은 미국이지만, 중국이 끈질기게 따라붙는 형세라 할 것이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는 것처럼 중국은 ‘대국굴기(大國<FFFC>起)’를 시위하듯 세계 전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한다. 우리는 그것을 ‘일대일로(一帶一路)’에서 극명하게 확인한다.

문제는 외교나 정치를 장사나 거래로 생각하면서 ‘아메리카 넘버원’이라는 믿음으로 똘똘 뭉친 트럼프가 제국의 수장이라는 사실이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중국과 미국의 경제전쟁은 21세기 세계를 누가 주도할 것인가, 하는 패권주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유럽 제국주의, 무엇보다도 대영제국의 후예로 이름을 날린 양키제국이냐, 아니면 150년 묵은 과거의 수치를 일거에 만회하려는 전통의 중화제국이냐, 하는 건곤일척의 대회전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물구경과 불구경 다음으로 재미있다는 ‘싸움구경’이 점입가경으로 치달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다. 문제는 거대제국들의 싸움판에서 예기치 않게 날아들 유탄이다. 지정학적인 위치로 인해 수천 년 중화세계와 국경을 맞대고 살아온 역사를 우리는 기억한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지금까지 전혀 자유롭지 못한 대미관계를 뼈아프게 통찰한다. 양키제국과 중화제국 사이에서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지는 앞으로도 우리 외교의 근간(根幹)이다.

한국 외교부를 점령하고 있는 미국 최우선주의는 이참에 재삼재사 숙고해야 한다. 영국의 저술가 마틴 자크의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이라는 서책의 주장도 있지만, 제국의 구심력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살피고 판단하는 슬기로움을 가져야 할 일이다. ‘화무십일홍’ 혹은 ‘권불십년’이란 말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를 근저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증유의 대변혁이 진행되고 있는 21세기 초반 시점에서는 새삼 재언을 필요치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