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혜명선린대 교수·교육학 박사
▲ 차혜명선린대 교수·교육학 박사

탄핵된 전직 대통령에 대하여 우리는 그가 ‘공감능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음을 지적하였다. 성장배경이 보통 사람들과 같지 않았으므로, 가족을 일구어 보지 않았으므로, 그리고 늘 높은 자리에만 있었으므로 그랬을 것이라고 하였다. 대통령도 분명히 실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당연히 알면서도, 국민은 그가 보여준 공감능력의 결핍에 참담하리만치 낙심하였다.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지도자가 나라를 이끌어 주기를 기대하였다. 보통 사람의 일상에 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함께 느낄줄 아는 이가 우리들 앞에 서 주기를 바랬었다.

공감. 영어로 sympathy 또는 compassion. 남의 의견, 감정, 생각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일이라고 한다. 상황과 성품이 사람마다 다를 것이므로 남의 느낌과 일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똑같이’라기 보다는 ‘그렇다고’ 느끼는 일이라고 적었을 터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같은 공감능력을 모두 충분히 가지고 있을까. 공감능력 결핍의 문제가 비단 전임 대통령에게만 있었을까. 혹 우리 사회가 가진 치명적 약점이 바로 이 ‘공감능력 부족현상’이 아닐까. 나는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견 그리고 느낌에 얼마나 이해하고 얼마나 함께 하고 있을까?

학교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떨어질 줄 모르는 청소년 자살률이 우리 모두의 걱정거리다. 이들 사회문제들도 ‘공감능력의 결핍’에서 까닭을 찾아야 한다는 최근 연구 발표가 있었다. 자신의 문제와 상황에 집착하면서 남들에 대해서는 배려 또는 공감하려 하지 않다보니,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에 다다른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을 경쟁적이며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상황으로 몰아넣기보다는, 예술과 문화를 교과과정에 접목시켜 공감능력을 키워가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맥락에서 뿐 아니라 우리 정치권에도 이 ‘공감능력 결핍현상’이 보인다. ‘내로남불’ 현상이 그러하며, 나와 다른 의견에 대하여 배려하는 마음과 경청하는 자세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국민이 보기에 그리 어렵지 않는 사안들에서도 끊임없이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불화만 부채질하는 집단이 오늘 우리의 정치권이 아닌가. 정치는 무릇 불화와 갈등을 조화롭게 마감하게 하고 국민과 사회가 안정적으로 평안하게 작동하도록 이끌어야 하지 않을까. ‘공감능력’에 관하여 우리 모두는 남을 탓하기보다 스스로 돌아보아야 한다. 21세기 글로벌 환경은 이미 바뀌었다. 세계는 이미, 이념 갈등의 소용돌이에 머물기보다 어느 편이 힘을 가지든 ‘화해와 협력’을 만들어 내기 위해 이념의 골짜기를 어렵지 않게 메우고 있다. 우리는 어째서 아직도 극심한 갈등과 다툼 가운데 머물러 있는지 살펴야 한다. 다음 세대를 기르는 교육의 현장에서도, 분열과 편가름을 가르치기보다 더불어 잘 사는 지혜를 가르쳐야 한다. 공감과 배려가 넘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하며, 이웃과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공감능력이 부족하면 ‘반사회성 인격장애’에까지 이른다고 한다. 개인의 공감능력 결핍이 사회적 맥락에서 다양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학교폭력과 청소년자살은 그런 증상이 일부분일 뿐이며, 보다 폭넓은 사회심리적 병리현상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공감능력이 부족하면 사회는 무너진다. 이처럼 중요한 인성 덕목인 ‘공감능력’을 어떻게 다시 쌓아올릴 것인지 함께 살펴야 할 터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건강한 사회성은 ‘공감’하면서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