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조선 중기의 학자인 장흥효(1564 ~1633) 선생의 ‘경당집, 일기요어(日記要語)’에 ‘ 자기를 이기기는 쉽고 남을 이기기는 어렵다. 자기를 이기는 건 나에게 달려 있고 남을 이기는 것은 남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라는 글이 있다. 자기를 이기는 건 실로 쉽지 않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을 부처는 전쟁에서 수많은 적을 혼자 싸워 이기는 것보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 더 용감한 일이라고 정리하였으며, 노자도 남을 이기는 자는 힘있는 자이나 자기를 이기는 자는 승부를 뛰어넘는 강한 자라고 했다.

자기와의 싸움은 온전히 자신에게 달려 있다. 자기를 이기려면 자기와의 싸움을 전제해야 하고 자기와 싸우려면 본래의 자기와 또 다른 자기를 전제해야 한다. 이 싸움은 자기가 본래의 자기를 부정하는 치열한 싸움이며 본래의 한계와 구속을 깨고 새로운 상향의 존재로 변모해 가는 숭고한 싸움이다. 그래서 중국의 북송 때의 사마광은 자기를 이기는 것은 ‘자기의 사사로움을 이기고 도를 따르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일상에서 무수히 자기와의 싸움에 직면하여 이 싸움에서 이기기도 하고 때론 지기도 한다. 다양화된 현대사회에서도 대표적인 자기와의 싸움을 치러야하는 것이 재물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은 동물과 달리 권력이나 재물에 대한 욕심이 내면세계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후진국일수록 재물을 이용하여 권력에 의탁해서 자신의 영달을 추구하려는 성향이 크게 나타난다. 즉, 재물을 원하는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과 이에 의탁해서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의 의식이 결탁해서 사회적 비리를 만든다. 결과적으로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돈을 주고 뭔가를 도모하려는 사람과의 수요공급의 법칙이 맞아 떨어진 결과가 비리로 나타나는 것이다.

조선의 선조 때 명재상이었던 이원익의 청백함을 포상하고자 인조가 흰 이부자리를 하사하는 일이 있었다. 이 이부자리를 전달하고 승지가 돌아오자 임금은 어떻게 살고 있던가하고 묻자, 승지가 말하기를 ‘기와도 아닌 초가인데 비가 새어 벽이 얼룩이 지고 문틈에서는 바람이 들 지경이옵니다.’ 고 대답하였다. 입시(入侍) 40년에 영의정까지 지낸 이가 겨우 초가 두어 칸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들은 임금이 눈시울을 붉혔다 한다.

세조 때 재상 이승소도 판서벼슬에 있으면서도 겨우 세 칸짜리 초가에서 살았다. 임금을 알현하고 있을 때, 마침 호화주택에 사는 병조판서 모씨가 입시하자 서로 모른체 하였다. 앞뒷집에 사는 같은 판서끼리 서로 모르는체 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세조가 이승소에게 ‘병판을 모르는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모르는 사이입니다.’ 고 대꾸했다. 조정에서 일하는 판서끼리 모를리야 없겠지만 모르는척하는 저의는 병판 모씨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 후 세조는 재물을 탐하는 신하가 입시하면 짐짓 알면서도 신이 누구더라? 고 이승소의 처세로 당황하게 만들었다한다. 이같이 인격적 척도의 상향을 위해 경제적 척도를 극소화하는 성향은 당시 한국 선비들의 본질이요 조건이었던 것이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과 노동자들의 대변자이자 진보정치의 아이콘이었던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지난 23일 투신하여 생을 마감했다. 이유는 댓글조작 사건으로 구속된 드루킹으로부터 정치자금 수수의혹을 받던 것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유서에서도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로부터 모두 4천만원을 받았다고 적혀 있다. 또한 본인의 어리석은 선택과 부끄러운 판단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적었다. 한 정치인이 내면의 도덕심이 정치자금수수라는 비리와 충돌하여 도덕심을 이길 수 없었기에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지금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느끼게 하는 각종 비리에 휘말려있는 정치인들도 스스로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한번 태어난 삶을 권력의 온갖 특권을 빌려 비리 속에 얼룩지며 살다가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