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우리나라 대학에서 인문학이 사경(死境)을 헤매고 있는지 오래다. 대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철학·역사·문학 등은 비인기학문으로서 통폐합 구조조정의 최우선 대상이 되고 있다. 취업이 잘 안되니 신입생 모집이 어렵고, 그 결과 교육부의 대학평가에서도 불리하기 때문이다.

‘교육백년대계’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할 인문학이 시장논리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대학에서 ‘생각이 없는 기계적 지식인’만 양산한다면 기술학원과는 무엇이 다른가?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포스텍이 추진하고 있는 인문학 강화정책은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더욱이 포스텍은 일반대학이 아니라 공과대학이라는 점에서 인문사회교육 강화는 다른 대학들에게 커다란 함의(implication)를 던져주고 있다.

포스텍의 김도연 총장은 “미래 리더를 기르는 과학기술대학으로서 인문사회교육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새로운 산업시대를 주도할 인재를 양성하려면 전공을 넘나드는 융합적 사고, 인간 이해와 탐구를 통한 창의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바로 이러한 인식에서 김 총장은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우리나라 사회학계를 대표하는 서울대 송호근 석좌교수를 9월 1일부로 포스텍 인문사회학부의 석좌교수이자 학부장으로 초빙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송 교수 역시 청춘시절부터 몸담았던 모교를 떠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과학과 인문의 균형을 위해 포스텍에서 할 일이 많다”고 포부를 밝히고 있다. 대학을 책임지고 있는 김 총장의 올바른 인재육성관과 삼고초려의 자세도 좋았지만, 서울대 최초의 인문사회계 석좌교수로서 정든 모교를 떠나 지방에서 새로이 시작하는 송 교수의 국가와 청년의 미래를 위한 용기 있는 결단에도 박수를 보낸다. 세계 최고의 명문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는 인문학의 석학 촘스키(N. Chomsky)교수가 있어서 더욱 빛났던 것처럼, 향후 포스텍에서의 송 교수도 반드시 그러한 존재가 될 것으로 믿는다.

그렇다면 포스텍의 인문사회교육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대학의 사명은 훌륭한 인재양성을 통해 인간사회를 유익하게 하는데 있다. 이를 위하여 ‘공학’에 ‘인간’을 넣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왜냐하면 ‘과학기술의 발전’에 그 ‘의미와 목적’이 더해질 수 있을 때 비로소 대학의 지성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른바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인문학적 소양과 융복합적 사고가 필수적이다. 현재 미국의 실리콘벨리에서는 인문학과 예술이 공학만큼이나 중요시되고 있다. 애플의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애플의 DNA는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교양과 인문학이 결합한 기술이야말로 가슴 벅찬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했다. 유튜브의 CEO인 보이치키(S. Wojcicki)는 역사와 문학을 전공했고, 메신저 개발업체인 슬랙(Slack)의 창업주 버터필드(S. Butterfield)의 전공은 철학이었으며, 중국의 알리바바그룹 마윈(馬雲) 회장의 학부 전공은 영어였다.

또한 공과대학 MIT의 인문사회학부는 “위대한 사상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슬로건을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처럼 공과대학에서 인문학의 가치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한다면, 하물며 일반대학의 경우 그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포스텍이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인문사회교육의 강화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우리 대학들이 ‘본연의 사명’을 다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