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때에 백낙천이라는 항주의 장관이 있었다. 그 동네에 태망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그곳에 유명한 고승 도림선사가 살고 있었다. 백낙천이 경전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도림선사에게 물었다. “불법(佛法)에 진리란 무엇입니까?”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는 행선피악(行善避惡)”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行善避惡은 사실 모든 종교의 기본적인 가르침이다. 백낙천이 이를 모를리가 없었다. 무슨 큰 가르침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이미 다 알고 있는 너무나 평범한 것을 말했기 때문에 백낙천은 실망해서 말하기를 “그것은 세 살 먹은 어린아이들도 아는 것 아닙니까?” 도림선사가 대답하길 “그렇지요, 세살 먹은 어린 아이도 알고는 있지만 팔십 먹은 노인이 되어도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行善避惡이오” 行善避惡이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인줄 잘 알면서도 行善行惡함은 무엇때문일까? 바울은 한 인간 속에 선과 악 두개의 본성이 공존하기 때문이라 했다.

영국의 단편작가 스티븐슨도 우리속에 선과 악 두개의 본성이 공존하고 있음을 ‘지킬박사와 하이드’라는 소설로 그려냈다.

대통령의 사돈이며 653억원 모금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민경찬씨는 의료계에서는 양심선언과 국민의 편에 서서 의료상담을 하고 권익보호에 앞장섰던 인물로 평가를 받던 사람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푸른솔 병원 부도로 인한 신용불량자로, 사기꾼으로, 거짓말 장이로 밝혀졌다.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국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국위선양을 하여 존경받는 김운용씨가 뒤로는 수십, 수백억원의 돈을 빼돌린 두 얼굴의 사람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성군 다윗도 선한 공적을 많이 쌓았지만 한편으로는 간통과 살인죄를 저질렀다.

行先行惡을 行善避惡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예수님은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른바 거듭남이란 개과천선(改過遷善)하는 노력이나 역사의 진보적 발전을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토마스 쿤이 말하는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으로만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것이 천도교에서는 천지개벽이요 기독교에서는 성령에 의한 중생이다.

오늘 우리사회는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나 천지개벽이나 성령에 의한 본성의 변화가 필요한 때이다. 각자가 자신이 가진 신앙심으로 行先行惡하는 본성을 行善避惡하는 본성으로 바꾸어 나가면 이 사회는 좀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다. <포항 흥해교회 강영식 목사>

    윤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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