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박형서 지음·문학동네 펴냄
소설집·1만3천원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날렵한 유머 감각으로 삶의 비극을 흥미롭게 이야기하는 소설가 박형서(46)의 다섯번째 소설집 ‘낭만주의’(문학동네)에는 ‘권태’ ‘시간의 입장에서’ ‘외톨이’ ‘거기 있나요’등 6편의 중단편이 실렸다.

소설은 어디서도 접해본 적 없는 흥미로운 사건을 구상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일찍이 삶의 권태로움을 알아차린 한 여자가 무심코 던진 불씨에 미국 대륙이 통째로 불타오르고(‘권태’) 무분별한 유전자조작으로 인해 닭의 멸종이 임박하며(‘시간의 입장에서’) 난쟁이 신분으로 태어난 뒤 몸만 커져버린 ‘키 큰 난쟁이’가 아이를 여읜 슬픔을 ‘일반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써야 한다(‘키 큰 난쟁이’). 아내가 바다에 빠져 익사하자 비탄에 잠긴 남자가 연구를 거듭해 지구상에서 바다를 날려버릴 계획을 세우며(‘외톨이’) 미시우주를 만들어 문명의 발생과 진화를 연구하던 과학자가 절대적인 힘의 유혹에 빠져 미시우주계의 신으로 군림하기도 한다(‘거기 있나요’).

하지만 박형서 소설의 진정한 묘미는 이런 상식을 뛰어넘는 사건들에 현실성을 불어넣는 작가의 놀라운 설득력에 있다. 예를 들어 ‘권태’에서 작가는 미국의 지형과 자연환경, 화염의 물리적 성질에 입각해 불길의 진행 경로를 치밀하게 설정함으로써 미국 전역을 남김없이 태워나간다.‘외톨이’에서는 보잘것없는 외톨이였던 재봉사의 아들이 과학 이론을 짜깁기해 시대를 뒤흔들 성과를 이룩했다고 익살스럽게 눙치는가 하면 그가 발명품을 완성하기까지 수행한 연구의 과정과 동원된 이론의 디테일을 꼼꼼하게 채워넣어 아내를 잃은 한 남자가 장엄한 바다를 상대로 복수극을 펼친다는 허황된 이야기를 가능할 법한 서사로 만든다.

/윤희정기자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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