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주<bR>한동대 교수
▲ 김학주 한동대 교수

질병의 치료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관심이 예방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유전자 진단과 더불어 백신도 예방 관련 의약품이다. 이미 백신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다. 과거에는 영유아 위주로 백신이 개발됐지만 지금은 60세 이상의 노인들이 영유아처럼 면역력을 잃어 가면서 성인백신이라는 새로운 수요층이 생기고 있다.

또 백신은 환자가 맞는 것이 아니라 정상인이 예방을 위해 접종하는 것이므로 개발된 백신의 상품성만 입증되면 수요기반은 엄청나다. 그 결과 GSK, 머크, 화이자 등 글로벌 제약사들은 백신 부문에서 이익을 쓸어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프리미엄 백신이 늘어나고 있다. 먼저 바이러스가 여러 변종을 만들면서 이를 한꺼번에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 개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폐렴구균 4가 백신은 네 종류의 변종 바이러스를 잡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 밖의 변종 폐렴구균의 경우 해당 백신을 접종해도 소용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화이자의 프리베나는 13가다. 즉, 열세종류의 변종 폐렴구균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방할 수 있는 변종 바이러스의 수가 늘어날수록 백신의 가격이 올라갈 수 있다. 또한 바이러스 가운데 암으로 발전하는 것들도 있다. 자궁경부암 바이러스(HPV)가 대표적인 예다. 이런 바이러스는 암으로 발전하여 사람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으므로 이를 예방하는 백신의 가치는 더욱 상승할 수 있다.

현재 자궁경부암 백신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곳은 중국이다. 과거에는 중국에서 상류층 여성들만 이 백신을 찾았는데 이 바이러스가 암으로 발전해 생명을 빼앗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반 여성들 사이에서도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백신 가격이 600달러에 이르지만 목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현재 자궁경부암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는 대표적인 백신은 머크가 개발한 가다실(Gardasil)이다. 중국에서 가다실은 품절 상태다. 중국에서 접종을 위해서는 6개월 이상 대기해야 한다. 중국 내 가다실을 유통하는 제약사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많은 중국 여성들이 홍콩, 한국 등으로 원정 와서 접종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머크가 백신 전문업체는 아니지만 가다실의 수요가 워낙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이것이 글로벌 제약사인 머크의 이익에 의미있는 도움을 줄 전망이다.

반면 국내 백신기업들은 아직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은 우선 백신 개발 역사가 짧다는데 있다. 2004년 녹십자가 개발한 독감백신이 최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퍼블릭 마켓(public market)이 있는데 이는 유엔이 빌 게이츠 같은 독지가들의 기부를 받아 아프리카 등 전염병 창궐지역에 백신을 개발해 제공하는 시장이다. 여기에 납품해 실적(track record)을 만들어야 해외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데 우리는 아직 초기 단계다.

그러나 국내 백신업체들의 성장 속도는 주목할만하다. 세계적으로 백신을 개발 생산할 수 있는 국가가 몇 안 되는데 한국이 그 중 하나다. 그 동안 한국 정부가 백신의 확보를 통해 국민을 전염병에서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안보처럼 생각해서 많은 투자를 한 결과다. 백신산업은 규모의 경제가 지배를 하기 때문에 한국업체들의 수출이 본격화되면 우리 기업들도 위상이 달라질 것이다.

한국에서는 녹십자가 대표기업이다. 가장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 놓은 기업이기도 하다. 그런데 과거 녹십자가 백신 개발 투자에 있어 잠시 망설였을 때가 있었다. 그 당시 훌륭한 과학자들이 동신제약으로 옮겨왔었는데 이를 SK케미칼이 인수했다. 사실 SK케미칼은 백신 이외에도 여러 사업이 섞여 있는데 향후 백신사업 부문만 분사될 가능성도 있으므로 관심을 가져볼 만 하다. 또 향후 백신의 개발수요가 많아질 수 밖에 없으므로 관련 임상업체들(CRO)들도 수혜를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