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찬규산업부
▲ 안찬규 산업부

1688년 명예혁명으로 영국 왕이된 윌리엄 3세는 ‘창문세’를 도입했다. 부유한 가정일수록 집이 크고, 당연히 창문이 많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출발한 이 정책은 결국 실패했다. 납세자들이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창문을 막아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창문이 없는 집에서 살아가는 국민들이 건강악화와 우울증을 호소하는 등의 부작용이 생겼다.

이 창문세와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소득주도성장은 비슷한 부분이 많다. 임금을 올려 서민들 주머니를 채우면 당연히 경제도 좋아질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이 시발점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도 현재까지는 실패한 정책으로 봐야 한다.

통계청의 올해 1분기(1∼3월)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최저소득층 소득이 관련 통계가 시작된 1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최저임금을 역대 최고치로 올렸는데 최저소득층 소득이 되레 줄어드는 기현상이 부정할 수 없는 통계수치로 드러났고, 부유층 소득은 오히려 늘어 소득 불평등이 역대 최고수준을 기록했다. 지난 4일 기획재정부 산하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의 내용도 충격이다. 2년간 최저임금을 연 15%씩 올리면 그로 인한 고용감소가 2019년 9만6천명, 2020년 14만4천명에 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해온 국책연구기관마저도 현 정부가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겠다는 계획에 정면으로 맞서는 모양새다. 매우 이례적이다.

최저임금 부작용은 올해 초부터 드러났다. 고용주들이 임금부담을 줄이려고 고용을 기피하면서 최저소득층 고용생태가 붕괴할 조짐을 보였다. 대기업들도 인건비를 줄이려고 무인·자동화 설비를 구축하는 데 열을 올렸다. 물가상승도 부추겼다. 인건비 지출을 만회하려고 기업을 비롯한 소상공인들이 음식·상품가격을 줄줄이 올렸기 때문이다.

창문세를 피하려고 창문을 막아버린 사람은 정부 정책을 악용했다고 볼 수 있으나 인건비를 줄이려고 고용을 줄이고 허리끈을 졸라맨 기업과 고용주를 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대로 가면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16세기 창문세보다 더 허술하고 실패한 정책이 될 수도 있다.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이 드러나자 정부는 지난달 말 문 대통령 주재로 가계소득동향 점검 긴급회의를 열어 정책기조는 그대로 유지하되 보완책을 마련한다는데 뜻을 모았다. 소득주도성장 모델이 실패했다고 인정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뉘앙스였다. 정부가 책상에 앉아 돌파구를 찾고 있는 지금도, 서민들은 팍팍한 삶에 지쳐가고 있다. 개선될 여지가 없다면 과감히 실패를 인정하고, 지금이라도 서민들을 위한 새로운 경제정책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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