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
▲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

지난 26일 속초 신흥사에서 무산당 오현 스님이 승랍 60년, 세납 87세를 일기(一期)로 입적했다. ‘벽암록’이 아니었다면 나는 오현 스님을 모를 것이었다. 우연찮은 계기로 주워들은 ‘벽암록’이 스님의 노고를 거친 서책이었다. 주지하듯이 ‘벽암록’은 선가(禪家)의 대표적인 공안(公案) 1천700가지 가운데 100편을 골라 본칙, 수시(垂示), 송(頌)과 함께 엮은 것이다. 우리는 공안 대신 화두(話頭)라는 표현을 쓴다.

‘벽암록’에 기술된 내용은 여러 번 읽어도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篇意自現)’이 불가능하다. 까까머리 양주동은 ‘몇 어찌’라는 단문(短文)에서 ‘기하(幾何)’의 뜻을 알고자 100번 넘도록 읊조렸지만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쓴다. 읍내에 살던 수학선생을 찾아가 뜻을 얻은 소년 양주동. 그처럼 ‘벽암록’은 나같은 천학비재가 아무리 되풀이해도 은산철벽(銀山鐵壁)처럼 격절(隔絶)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오현 스님은 ‘사족’으로 난해의 장벽을 허물어버린다.

신흥사와 백담사 조실을 지낸 고승이지만 그는 시조시인이기도 했다. 2005년 ‘세계평화시인대회’ 만찬장에서 즉흥적으로 시조를 지어 낭송하여 좌중(座中)을 놀라게 한다.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어차피 한 마리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이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

생사의 경계를 자유자재 넘나드는 호쾌한 정신과 유한한 인생살이에 대한 도저한 성찰이 공존한다. 죽음에도 즐거움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은 범부(凡夫)의 상념으로는 역부족이다. 더욱이 기어다니는 벌레로 스스로를 낮추면서 다음 생의 모습을 투영하는 자세는 압권이다. 누구나 꿈꾸는 극락왕생과 대치하는 구도자의 모습이 약여하다. 사람의 모습으로 왔지만, 후생에서는 숲속의 새 먹이가 되리라는 고집스러움에 묻어나는 결기가 매섭다.

이럴진대 삶과 죽음을 초탈했다고 일컬어지는 장자가 떠오를 수 밖에. 장자의 아내가 죽자 친구인 혜시(惠施)가 위로하러 장자를 찾아온다. 뜻밖에 장자는 노래하며 춤추고 있었다 한다. 깜짝 놀란 혜시가 자초지종을 묻는다. 장자의 대답은 이러하다.

“아내는 본디 생명도 형체도 없었다네. 그 뒤 언젠가 양기와 음기가 모여 형체가 되고 생명이 되어 생겨난 것이지. 지금 아내는 생명이 죽음으로 변한 것뿐이라네. 마치 사계절의 순환과 같다고나 할까. 아내는 태어난 곳에서 편히 쉬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네.”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천하만물생어유 유생어무(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를 설파하는 장자의 목소리. “천하 만물은 유에서 나왔지만, 유는 무에서 나온 것이다.” 무에서 생겨난 아내가 유의 세계를 거쳐 다시 무의 세계로 돌아감은 자연의 이치와 동일한데 무슨 슬퍼할 겨를이 있단 말인가?! 장자는 그렇게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불가와 도가의 친연성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과 여기에 포박되어 있으면서도 다가올 날들의 성공과 영광을 기대한다. 오늘의 고통과 피로와 분노가 언젠가 천만 배 아름답고 따사롭게 보상받으리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다. 우리가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지금과 여기에 포박되지 아니하고 미래의 도래를 믿는 까닭은. 하되 장자와 오현 스님은 애당초 그런 기대는 눈곱만큼도 없다.

누구나 오는 모습은 대동소이하되, 가는 것은 천차만별이다. 스님의 열반을 접하면서 2천300년 전 세상 버린 장자가 홀연 떠올라 일필휘지로 두 분 기린다. 평안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