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운붕 스님

조계종 포항 대성사 주지
사명당사업회 중앙회장에
기념관 서울 건립 추진키로

▲ 제5대 (사)사명당기념사업회 중앙회장으로 취임하는 운붕 포항 대성사 주지 스님. /안성용 사진작가 제공

사명대사 유정(1544∼1610) 스님은 우리나라 역대 고승 중에서도 서산대사 휴정(1520∼1604) 스님과 함께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진 의병장의 한 스님이다. 그것은 임진왜란이라는 민족적 수난기에 의병을 이끌고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스님의 구국구민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기에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모르는 사람이 없고, 또 숭앙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이러한 민족적인 경외심은 드디어 그를 신이승(神異僧)으로 변화막측(變化莫測)의 도인으로 이적시켜 갖가지 설화를 오늘에 남겼다.

대한불교조계종 포항 대성사 주지 운붕 스님이 사명대사의 업적을 조명하기 위한 여러 현양사업을 추진하는 제5대 (사)사명당기념사업회 중앙회장으로 취임한다. 오는 6월 5일 취임에 앞서 30일 운붕 스님(포항 대성사 주지)을 만나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봤다.

-사명대사는 어떤 분인가요.

△사명대사(임응규)는 1544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열 네 살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그 다음해인 열다섯 살에 아버지도 세상을 떠난 뒤 김천에 있는 직지사로 가서 출가했다. 속세의 응규(應奎)라는 이름은 생각할 유(惟), 정사 정(政) 즉 정사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며 나라의 일을 생각한다는 뜻의 유정으로 바꿨다. 그는 직지사의 주지를 지내다가 묘향산 보현사를 찾아가 서산대사의 제자가 되었다. 묘향산에서 스승인 서산대사로부터 많은 학문과 선리(禪理)를 전수받고 팔공산, 금강산, 청량산 등을 다니면서 수행하고, 다시 금강산으로 들어가 수도하던 중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유정 스님은 스승인 서산대사로부터 “지금 나라가 위급하니 구해야한다”는 격문을 받고 급히 달려가 승병을 모아서 적진에 뛰어들게 된다. 사람들은 왜군과 싸워 수많은 전공을 세운 그를‘사명대사’라 부르게 된다. 사명대사는 국방에 깊은 관심을 표현해 팔공산성, 금오산성과 용기산성, 악견산성, 미숭산성, 부산산성, 남한산성을 수축했다. 1604년 2월에 오대산에 있을 때 스승인 서산대사의 부음을 받고 묘향산으로 가던 중에 선조 임금의 부름을 받고 조정으로 가서 일본에 사신으로 가게 된다. 도쿠가와와 교섭해 왜적에게 사로잡혀간 백성 3천여 명과 강탈해간 많은 보물들을 되찾아 귀국했다. 영의정에 추대됐으나 3일 만에 사양하고 그해 10월에 묘향산으로 가서 스승인 서산대사의 영전에 참배했다. 그 뒤에 해인사에서 요양하다가 1610년 8월 26일 설법을 하다가 결가부좌 한 채로 앉은 자세로 입적했다.

-사명대사 원불을 소장하고 계신데요.

△내가 주지로 있는 대성사에는 사명대사가 호신불로 모셨던 불상이 봉안돼 있다. 호신불은 유형문화재 제409호로 높이 9.5cm의 소형 금동여래좌상이다. 조선전기의 양식을 띠고 있으며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를 하고 왼손은 두 손가락을 맞댄 모양의 선정인,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내려 촉지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또한 호신불과 함께 전해 내려온 발원문이 사명대사의 원불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나발의 머리에 육계가 높이 솟았으며 육계 정상에 연꽃봉오리 모양의 계주가 표현돼 있다. 대좌는 양련과 복련이 연접한 연화좌인데 꽃잎 가장자리는 선각해 사실감을 강조하고 있고 꽃잎 사이에 다시 둥근 꽃잎무늬를 양출해 입체감 있게 표현했다. 이 불상은 금강산 건봉사 낙산암에 소장돼 있다가 1900년대 초에 사라진 뒤 1913년 조선총독부가 촬영한 유리원판 사진으로만 전해져 왔다. 나는 스승으로부터 20여 년 전 이 불상을 건네받아 소장해 왔다.

- 사명대사 현양사업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요.

△경남 밀양시는 2006년 4월 사명대사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출생지인 무안면 고라리 4만9146㎡의 부지에 생가 복원과 함께 기념관, 추모공원을 건립해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부산시에는 사명대사비와 사명호국광장이 건립돼 있다. 포항 대성사에서는 2014년 10월 사명대사를 기리는 숭모비를 조성하고 다례제와 함께 제막식을 거행했다. 숭모비에는 돌의 수명은 만년이 가고 난의 향기는 사방에 퍼진다는 추모시와 사명 대사의 친필 발원문이 새겨져 있다. 이후 인연의 공덕으로서 후손들이 그 뜻을 이어받아서 나라를 사랑하는 그런 마음을 배웠으면 하는 마음으로 매년 다례재를 봉행하고 있다.

-향후 계획과 포부를 전하신다면.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에 못지 않은 큰 활약을 한 사명대사는 나라 사랑과 중생 구제를 위해 분연히 나섰던 구국의 선승이다. 독도와 위안부 문제로 한·일 갈등의 골이 깊은 현실에서 사명대사의 강화 활동 재조명을 통해 갈등 치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여러 국내외 정세로 어지러운 지금 이 시대에 호국과 애국이 진정 무엇인지 깨닫고 또한 우리의 마음을 합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앞으로 사명대사의 사상의 연구·선양으로 민족정기 확립을 도모하는 여러 사업을 계획 중이며 대사를 기리는 기념관을 서울에 건립하는 많은 불자들의 원대한 꿈도 추진할 계획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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