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외교가 중대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의 취소를 발표함으로써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에 당황한 북한은 미국에게 유화적인 자세로 정상회담의 개최 희망을 거듭 밝히는 동시에, 문 대통령에게는 극비리에 비공개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해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재천명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회담 직후 그 결과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상세하게 전달했음은 물론이다. 이에 트럼프는 실무협상의 결과에 따라 북미정상회담이 다시 정상적으로 6월 12일에 개최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문 대통령의 비핵화 중재외교는 북미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북미 간 직접대화를 통한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중재외교의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된다. 또한 전격적으로 열린 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꺼져가는 북미정상회담의 불씨를 다시 살려냈다는 점에서 중재외교의 의미는 적지 않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중재외교를 통하여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준비된 중재자’로서 향후 구체적 협상의 진행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수많은 난관들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한국은 북한의 핵 위협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미동맹의 당사국이라는 점에서 ‘중재자로서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더 세심한 주의와 준비가 필요하다. 대통령의 중재외교 추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재의 목적’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다. 중재외교의 1차적 목적은 비핵화 협상과정에서 북한과 미국의 이해갈등을 중재하는 것이지만 그 ‘궁극적 목적은 한국 안보와 한반도 평화정착’에 있다.

중재외교의 초점을 북한과 미국의 이해관계 조정에만 두게되면 자칫 우리의 국익을 간과하게 된다. 만약 美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먼저 제거하고 핵무기는 단계적으로 폐기하는 것으로 북미협상이 타결된다면 우리에게는 악몽(惡夢)이다. 미국은 이미 인도·이스라엘·파키스탄이 ICBM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핵보유를 허용한 전력이 있다. 미국에게는 ICBM이 중대한 위협이지만 우리에게는 핵무기가 더 큰 위협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 중재외교는 강력한 한미동맹의 바탕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북한이 주장하는 ‘우리민족끼리’와 같은 한미동맹의 균열전략에 말려 들어가면 미국의 불신을 초래하게 된다.

한미정상회담 직후 정의용 안보실장은 북미회담이 “99.9% 성사될 것”이라고 했으나 미국은 하루만에 회담취소를 발표했다. 북한은 이미 두 차례 북중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의 지원을 확보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북한의 비핵화는 핵동결·신고·사찰·검증·폐기 등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한미동맹은 여전히 중요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스타일이 ‘일관성이 없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한미동맹의 균열은 우리의 국익을 훼손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비핵화의 핵심인 ‘검증(verification)’이 끝날때까지 ‘살얼음판’을 걷게 될 중재외교의 성공을 위해 철저한 연구와 대비가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중재외교는 북미정상회담 개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어려움이 예상되는 핵사찰과 검증을 거쳐 비핵화가 완료될 때까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비핵화 과정에서는 ‘위계(僞計)의 위험’이 상존(常存)할 뿐 아니라 북한의 ‘주권존중 요구’와 미국의 ‘투명성 요구’가 또다시 심각한 갈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