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철산 스님
조계종 포항 보경사 주지
현 한국사회는 혼돈의 시대
“원론적 답으론 갈등 못 풀어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 철산 포항 조계종 보경사 주지 스님이 지난 16일 경내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안성용 사진작가 제공

“‘내려놓는 삶’은 행복합니다. 부처님 가르침도 다르지 않습니다. 탐·진·치 삼독을 내려놓으라고 하셨거든요. 어려운 말 같지만 사실은 ‘욕심’이라는 쉬운 말입니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행복해진다, 이런 가르침이거든요. 마음을 비웠는데 마음 그 속에 있어야 할 원망, 미움 이런게 존재 할 수 있겠어요? 이미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고 듣는데?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런 마음을 갖는다면 행복하고 행복한 극락이겠지요.”

불가에서는 음력 4월 8일 가장 큰 명절인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일 년 중 가장 분주한 날을 보낸다. 그럼에도 지난 16일, 천년고찰 포항 조계종 보경사에서 철산 주지 스님을 어렵사리 만날 수 있었다. 스님은 포항불교사암연합회장으로 19일 있을 제등행렬 준비로도 바쁜 가운데에서도 시간을 내 주었다.

철산 스님은 현재 한국 사회가 지독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현 시대를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혼돈의 시대라고 표현했다.

스님은 “남북 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으로 한반도에 짙게 드리워진 전쟁위기가 걷혀지고 오랜만에 희망의 봄이 찾아올 것이라고 하는 이들이 많지만 정치, 경제, 사회 어디에도 희망은 보이지 않고, 주변은 온통 갈등과 반목으로 얼룩져있다”며 “같이 공존해야 하는 사회에서 다들 혼자만 잘 살려한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어 “세상은 예전과 다른 새로운 갈등이 발생하면서 점점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특히 여러 세대가 한 시대에 공존하면서 겪는 갈등은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견해 차이, 예의범절의 변화 등 서로 다른 시대의 삶에 공감하지 못해서 겪는 갈등들은 원론적인 대답만으론 갈등을 풀어가기 힘든 세상”이라면서 “이처럼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시기에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은 지난해 신년하례 법회에서 법어를 통해 저마다의 본성을 회복하여 격랑에 휩싸인 혼돈의 시대를 극복하고 수승(殊勝·특별히 뛰어남)한 지혜를 모아 나라를 안정시키자고 말하셨습니다. 스님은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는 항산항심(恒産恒心)을 인용하며 항산으로 국민이 안심입명처(安心立命處·마음이 안정된 장소)를 얻도록 하고, 항심으로 대승 보살의 자리이타(自利利他·남을 이롭게 하면서 자신도 이롭게 함)로 복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각자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본분에 충실토록 하자고 당부하셨습니다.”

우리 사회가 혼돈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로 철산 스님은 개인이 자기의 욕심을 내려 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이유로는 화를 참지 못하는 것을 꼽았다.

“나의 이득을 위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이웃을 위한 배려와 봉사 등 좋은 일을 향한 욕심은 키우고, 나만을 위하는 이기심은 버려야 합니다. 이러한 길이 바로 자비를 향하는 또 다른 길이 될 것입니다.”

철산 스님은 불교의 자비는 고통을 해결해서 즐거움을 주는 것, 즉 발고여락(拔苦與樂)이라고 설명했다.

스님은 “내 안의 밝은 마음이 곧 부처님의 광명”이라며 “백 번이나 단련한 진금(眞金)과 같이 참나(본래 모습의 나)를 찾아내자. 그리하여 정월 초하루 아침 해처럼 그 빛으로 이웃과 사회를 환하게 밝히자”고 말했다.

이어 스님은 “비트코인(Bitcoin)을 위시한 가상화폐 광풍(狂風)이 2030 세대의 마음을 흔들고 있습니다. 이렇듯 이전에 겪지 못했던 방식의 혼란스러움과 고통이 있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힐링을 줄 수 있는 가치관의 존재가 필요하게 됐습니다. 가치관이 혼란스러운 지금 강한 멘탈 없이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든 세상이 됐고 탈무드의 가르침이나 공자의 가르침으로 극복하기에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갈등 하나 하나에 과연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조차 알기도 쉽지 않습니다. 원론적인 대답만으론 갈등을 풀어가기 힘든 세상”이라고 지적했다.

스님은 “많은 지성들이 혼돈의 시대야말로 강한 멘탈을 위한 철학적 깨우침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장엄하고 난해한 철학이나 이론을 논하지 않고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많은 갈등 하나 하나에 철학적 지식을 담아 습득하도록 하자”고 강조했다.

“모든 종교는 자비를 추구하고, 모든 사람은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대 사회가 겪는 온갖 갈등들은 자비의 결여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갈등이 난무하는 혼탁한 세상일수록 부처님의 지혜를 등불로 삼아야 합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정성으로 부처님전에 등을 올리듯 마음에 밝은 지혜와 자비의 등불을 밝혀야합니다. 그래야 행복한 가정, 아름다운 사회,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스님의 일갈이 보경사 땅거미 위로 밝아오는 연등 불빛에 촉촉히 젖어들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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