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풀뿌리 민주주의(Grassroots democracy)’라고 불리는 6·13 지방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유권자 표심을 겨냥한 인기영합주의, 이른바 ‘포퓰리즘(populism)’에 대한 우려가 증대되고 있다. 지방자치라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풀뿌리 포퓰리즘’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이상이 왜곡된 병리적 현상인 동시에, 민주주의의 내재적 한계가 초래한 도전이다. 포퓰리즘은 선거정치에서 유권자의 표심을 얻기 위하여 온갖 ‘감언이설(甘言利說)’로 현혹한다는 점에서 기회주의적이고 무책임하다. 재원조달 방안도 없는 각종 복지확대 공약에서부터 중앙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추진이 가능한 공약에 이르기까지 오직 당선만을 목적으로 현실성도 없고 무책임한 공약(空約)들이 남발되고 있는 것이다. 선거정치에서 포퓰리즘을 이용하여 승리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고 있는 후보자는 이념적으로 보수와 진보를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포퓰리스트(populist)들은 적과 동지라는 이분법적 흑백논리로 '반이성적인 선동정치'를 일삼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그들이 활용하는 이분법은 정치현상을 지나치게 극화(劇化)시킴으로써 그 본질이 왜곡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을 선동하여 지지를 유도하는 데에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자주 악용된다.

더욱이 포퓰리스트의 선동정치가 힘을 얻는 곳에서는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인 ‘합리적 사유’와 ‘이성적 토론’이 불가능하다. 포퓰리스트는 유권자의 이성보다는 감성, 복잡한 논리보다는 단순한 설명으로 자신에 대한 지지를 유도해 낸다. 이 같은 포퓰리스트의 선동적인 동원정치에 현혹되어 유권자들이 이성적 판단을 상실하게 되면 민주정치는 ‘중우정치(衆愚政治)’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민주주의에 있어서 '정상적인 민주정치'와 ‘비정상적인 포퓰리즘’을 구분하는 것이 점차 힘들어지면서 선거정치에서도 ‘내로남불’이 확산되고 있다. 후보자들은 ‘내가 하면 민주주의’이고 ‘남이 하면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포퓰리즘의 도전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선거정치에 나서는 후보자는 물론이고, 후보자의 공약을 판단하는 유권자들의 인식과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후보자의 입장에서 볼 때 유권자의 표심을 얻어야 하는 선거정치에서 어느 정도의 포퓰리즘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후보자의 지나친 인기영합주의는 유권자들을 ‘중우정치의 늪’에 빠지게 함으로써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한다. 따라서 후보자들은 확고한 민주주의 가치관을 가지고 포퓰리즘의 유혹을 극복하는 동시에, 실현 가능한 정책대결을 통하여 유권자의 선택을 받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포퓰리즘의 도전을 극복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책임은 후보자가 아니라 유권자에게 있다. 왜냐하면 당선을 목적으로 출마한 후보자는 포퓰리즘의 유혹을 떨쳐버리기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민주주의는 국민에 의한 정치'이기 때문에 국민의 절대다수가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에 현혹되지 않는 한 선거정치에 나선 후보자가 포퓰리즘을 이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감성이 아니라 이성의 잣대’로 후보자가 ‘민주주의자인지 포퓰리스트인지’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유권자들이 혈연·지연·학연이나 개인적 이해관계에 매달리지 않고 후보자의 능력·정책·비전 등을 살펴보고 판단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풀뿌리 민주주의는 성장할 수가 있다. 민주정치는 ‘선동정치가 아니라 토론정치'이기 때문에 ‘감성이 아니라 이성적 토양’에서 잘 자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