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경북대 교수 노문학부
▲ 김규종경북대 교수 노문학부

작년에 ‘문학과 영화 그리고 나’를 수강한 사회대 학생이 어느 날 내가 왜 진보인지, 묻는다. 내가 진보야, 하고 되물었다. 그렇지 않은가요, 하는 되물음이 돌아온다. 글쎄, 상대적인 개념 아닐까, 나는 고개를 젓는다. 질문의 고갱이는 나이든 축은 보수로 회귀한다는데, 왜 당신은 그 나이 되도록 진보를 고수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진보와 보수의 경계는 모호하여 명확한 선을 긋기 어렵다. 평가대상에 따라 천양지차가 가능한 것이 진보냐, 보수냐 하는 이분법이다. 예컨대 나는 ‘근로자의 날’이라는 용어에 반대한다. ‘노동절’이라는 표현이 좋다. ‘근로’가 오래전부터 통용되었다는 사실도 나를 위로하지 못한다. 외려 일제강점기의 ‘근로정신대’와 ‘근로보국대’ 같은 용어가 생각난다. 여기에 박정희 철권통치시기에 만들어진 ‘근로자의 날’에 대한 거부감이 덧대진 탓이다.

방송보도에 따르면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서 5월 1일은 ‘노동절’로 수용되었다고 한다. 이승만 독재가 횡행했던 1950년대에도 ‘노동절’은 의연하게 제자리를 지킨다. 그러다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1963년에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대체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1967년까지는 ‘노동절’이 더 많이 통용되었다 한다. 요약하자면 박정희가 ‘국민교육헌장’을 반포하고, 684부대를 만들면서 이른바 ‘3선 개헌’을 준비하던 1968년부터 ‘근로자의 날’이 우세를 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노동절’에 찬성하지만 교수노조에는 가입하지 않는다. 교수가 지식 노동자라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노조를 만들어 활동해야 한다는 당위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조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고통받고 신음하는 노동자들의 권익과 천부인권을 실현하는 단체라고 생각한다. 교수처럼 사회·경제적 신분이 안정된 자들이 노조를 말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소회(所懷)가 내게는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판단은 오롯이 나의 주관적인 기준이다. 언젠가 이런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과 여기라는 시공간에서 나의 판단은 그러하다. 여기서 진보와 보수개념이 뒤섞인다. 노동절을 선호하는 진보의 입장과 교수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보수의 입장이 혼재한다. 아마도 이런 혼융과 혼재양상은 세상사 모든 일에 적용 가능하리라 믿는다. 따라서 진보냐 보수냐, 하는 질문은 사태의 핵심과 거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대답은 이러하다. “죽을 때까지 나는 진보의 편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첫 번째 이유는 보수라 함은 지키고 또 지키겠다는 것인데, 내게는 지킬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야. 돈도 명예도 사랑도 권력도 가지지 못한 인간이기 때문이지. 두 번째 이유는 삶이란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아가고 다시 나아가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죽음이 찾아오는 최후의 순간까지 존재이유를 찾아서 전진하고 또 전진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 아니겠니?!”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을 두고 설왕설래가 차고 넘친다. 나는 회담 당일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반도가 아닌 섬에 갇혀 산 지 70년 세월! 그 세월이 봄눈 녹듯 사라지고 민족사의 새로운 명운이 다가서는 환희의 술잔을 비우고 또 비운 게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런 변화와 새로운 시대가 끔찍하게 싫은 모양이다. 지금과 여기에 만족하고 지킬 것이 많은 사람은 제자리걸음하면서 지키고 또 지키고 싶어서일 것이다. 돌궐의 건국자 돈유곡은 이렇게 말했다 한다. “성을 쌓고 사는 자, 기필코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 그가 살아남을 것이다. (‘초원, 실크로드를 가다’, 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