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혜명선린대 교수·교육학 박사
▲ 차혜명선린대 교수·교육학 박사

봄은 그 자체로 눈부시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산하를 어느 틈에 초록으로 물들이는가 하면, 시냇물 개구리와 담장 옆 개나리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사람이 어느 한 자락 거들지 않았는데 알아서 찾아온 이 계절은 방금 지나온 겨울과 비교하면 가히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살을 에이던 찬 공기는 어디로 갔으며 두텁던 얼음장은 어디 갔는가. 차갑게 얼어붙었던 사위에 갇혔을 적에 우리는 봄을 기다리지 않았던가. 오도가도 못 하는 추위와 긴장 속에서 따스한 봄볕을 기대하지 않았던가.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에도 겨울이 있고 봄이 있다. 사면초가 답답한 시절을 보내면서도 봄처럼 다가올 돌파구를 희구하는 것이다.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집안 사정이 그렇고 수십 년을 두고도 풀리지 않던 남북관계가 그렇다. 내일이면 남북의 정상들이 만난다는데, 이제는 한반도에 봄이 오는가 높은 기대가 걸린다. 하루하루 사는 일에도 내일이면 나아질까 기다림이 있다.

날마다 청명하기를 바라지만 이따금씩 비가 내린다. 봄비. 어두운 겨울을 뚫고 이제는 봄인가 했더니 아니, 그만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화사한 봄날이면 좋았을 것을, 우중충한 봄날도 있는 것이다. 나른한 봄날을 즐기려 했더니 꼭 한번 씩 시샘추위도 찾아오는 것이다. 거의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비와 꽃샘추위는 또 한 자락 깨우침을 떨구어 놓는다. 각자의 마음에 긴장을 놓지 말라는 것을….

나를 찾은 봄이 꼭 나만의 노력으로 오지 않았던 것처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어려움도 불현듯 닥치는 것이다. 그러니 잘 나갈 때 오히려 조심하라는 것. 풀려갈 때 느슨하지 말라는 것. 좋아졌을 때 차라리 경계하라는 것. 혹 비가 내리면 어찌 할 것인지 잘 살피라는 것.

남과 북의 만남은 그 자체가 가슴 설레는 일이다. 눈이 녹고 꽃이 피듯이 따사로울 것이지만, 반드시 또 비가 내릴 것을 상상하며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어려움이 저 길에 서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참으로 오랜만에 가질 해빙을 만끽하면서 어쩌면 다가올지 모를 어려움을 생각해 볼 일이다. 따뜻한 봄에도 차가운 비가 내리듯, 남북의 관계에도 어느 자락에 찬 서리가 내릴지 모를 일이다. 봄은 찾아왔지만, 비를 경계할 일인 것이다. 그래도 국민은 설렌다. 이게 얼마 만인가. 만남에 임하는 모든 이들이 봄에도 내릴 비를 경계하면서 평화의 길을 잘 닦아주길 기대할 뿐이다.

안으로는 어떤가. 이제 또 선거의 계절. 누구를 뽑고 나면 봄이 올 것인가. 우리네 힘들었던 삶의 모습이 정말로 나아질 것인지. 봄이 가져다 준 기적에는 못 미칠 약속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국민은 다시 한 번 속아 넘어갈 채비를 하고 있는 중. 우리는 얼마나 순진하고 바보 같은 것인지. 잘 살피며 표를 던진다고 매번 다짐하지만, 지나놓고 보면 언제나 실수가 아니었던가. 입후보한 이들이 진정으로 국민을 생각하길 바라고, 투표하는 이들이 풀어야 할 문제에 집중하길 바란다. 아니, 투표에 임하지도 않고 불평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남북대화의 희망도 지방선거의 기대도 사실은 모두 우리의 시선에 달려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시선이 올곧은 줄 눈치 챌 적에 남북의 정상들이 평화를 반듯하게 찾아올 것이며, 보통 사람들의 눈초리에 흔들림이 없을 때에 좋은 사람들이 대표로 선출될 것이다.

나라에도 지역에도 봄이 오길 바란다. 너무 긴 겨울이었고 오래 기다린 봄이 아닌가. 따뜻한 봄 햇살이 찾아들길 기대하면서, 또 함께 내릴 빗소리도 상상하며 대비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한다. 봄에도 비는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