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 살며생각하며 ⑪

오후 5시 40분. 용산역 CGV. 세월호 참사 진상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영화 ‘그날, 바다’가 상영되는 첫날이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벌써 한 2주 전부터 상영 예고, 광고가 계속되었으므로 꽤나 관객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객석에는 불과 서른 명쯤, 실망스럽다고나 할까. 벌써 많이들 잊었다는 것일까.

세월호 참사가 난 것에 관해 오래 반복되면서 지속되는 오해들이 있다.

하나, 그날 바다가 풍랑이 쳤을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그날 오전 티비 화면에 비친 바다 풍경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호가 가라앉은 후 밤바다를 비춘 화면들, 배를 건져 올릴 수 없다는 소식들은 마치 풍랑이 있었던 것만 같은 착각을 선사한다. 둘, 지나치게 많은 짐을 실은데다 급히 뱃머리를 돌린 것이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몇 년 동안 계속된 지난 정부의 공식 견해이기도 하다. 영화 ‘그날, 바다’는 바로 이 견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셋, 구원파를 이끈 유병언이라는 이와 청해진 선박회사의 경제적 동기가 배경이라고도 한다. 그때 경찰 병력이 안성 금수원을 에워쌌는데, 전혀 다른 곳에서 그는 풀밭 위에 백골이 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죽음이 ‘전시’된 듯한 그 무렵 숱한 유언비어들과 검거 ‘쇼’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성가시게 가렸지만 지금 그 구원파니 유병언이니 하는 말은 저만치 뒤로 물러섰다.

그날 아침에 왜 선원들은 아이들에게 선실에서 나오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러기는커녕 움직이면 더 위험하니 안에 가만히 있으라고들 했다. 헬리콥터도, 해경선도, 해군배도, 어떤 구조대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데, 배가 다 가라앉을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는 거다.

해경 123정은 탈출 방송을 했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곧 탄로가 나고 말았다. 무엇보다 과연 그 김경일이라는 이와 그 대원들은 무슨 특수 임무라도 띤듯 선원들만 달랑 데려갔고, 그들은 참사의 최종 책임자들처럼 재판에 회부됐다. 123정 사람들은 공무원들이고 구조가 기본 임무일 텐데 과연 다른 ‘명령’ 없이, 구조활동을 안 하는 게 가능했을까?

‘그날, 바다’의 메시지에 따르면 그날 세월호는 ‘공식’ 조난 시각보다 훨씬 일찍부터 이상한 항적을 그리고 있었다. 오늘 KBS 단독 보도에 따르면 침수에 대비해 닫혀 있어야 할 수밀구들이 모조리 열려 있었다. ‘그날, 바다’는 수상한 항적에, 왼쪽 닻도 수상하다고 했다. 학생들이 유황냄새 가까운 계란 냄새가 난다고도 했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의혹들, 의문들은 아직도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그날만은 모든 것이 여느 때와 달랐다. 정부 요인들도, 구조 실무 담당자들도, 선원들도 정상적인 행적을 남기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왜?

이번 정부는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이 질문에 성실히 답할 의무가 있다. 새롭게 출발한 세월호 진상조사 위원회의 활동이 보장되어야 하고 또 적극 지원되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정치적으로 해석되거나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날의 진실에 대한 성실한 접근이 모든 해결의 첫 걸음이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