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혜명선린대 교수·교육학 박사
▲ 차혜명선린대 교수·교육학 박사

봄날 아침, 꽃샘추위였는지 뚝 떨어진 기온에 움츠러들었지만 마라톤에 함께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설레었을까 모두들 상기된 모습이었다. 살아가는 일에도 날마다 그만큼씩만 흥분되어 있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즐겁게 이겨내지 않을까 싶었다. 출발선에 선다. 아니 그 출발선에 서기까지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우선 건강해야 뛸 수 있으니 이 날 만큼은 아프지 말자 다짐하며 기다려온 오늘이 아니었을까. 가장 좋은 기분으로 달려가기 위해 마음도 다스리며 이 아침을 맞지 않았던가. 모두에게 같은 조건. 진짜 문제는 언제나 내 안에 있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타이밍이 맞아야 하고 적절해야 한다. 건강은 물론이고 마음도 잘 다스려야 한다. 그리고야 출발선에 서는 것이다. 자, 달려 나가자.

어디로부터 이렇게 많이들 찾아 왔는지. 함께 뛸 사람들이 모두 즐겁다. 서로를 격려하며 서로를 응원하며 악수도 하고 박수도 치고.

오늘은 차라리 축제의 날. 이렇게 좋은 날 더불어 달려 나가며 어우러져 이 도시를 들뜨게 하자. 달리는 발자욱마다 이 길을 새 기운으로 물들게 하자.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이란 차라리 성스럽지 않은가. 하늘이 보고 있다면 마라톤 광장에는 축복이 가득하지 않을까. 한 사람도 불평하지 않으며 모두가 행복한 이 시간의 넉넉함은 어디서 왔을까. 뜀박질을 함께 즐기자는 단순한 초청에도 이렇게 행복한 것을, 우리는 일상에서 왜 그렇게 힘들게 살고 있을까.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도 어차피 이 도시를 지킬 것이라면 날마다 사는 일도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친구와 이웃과 동료가 있음을 기억하며 나아가는 모두라면 오히려 격려가 되고 응원도 받아가며 어려운 일도 쉽게 해낼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함께 숨쉬는 공동체를 어떻게 살려내는가에 달려있지 않을까.

달려 나간다. 누구는 천천히, 누구는 빠르게. 결승점에 이르기까지 모든 길들을 생각 속에 그리며 달려 나간다. 서로 다른 보폭이지만 자신은 만만하다. 끝까지 달릴 것을 기대하면서 지치지 않고 달릴 것을 상상하면서 내닫는 것이다. 달리는 길 위엔 새 봄이 풍성하다. 만개했던 벚꽃이 벌써 지려는지, 하지만 새파란 봄 하늘이 보폭처럼 출렁인다. 이렇게 싱싱했구나, 세상의 모습은. 이렇게 즐거운 길이었구나, 함께 뛴다는 일은. 펼쳐지는 길거리가 새삼 정겹다. 아등바등 애쓰며 살아보지만 무슨 큰 차이가 있었던가. 이제 돌아가면 즐겁게 살아야지 다짐도 되고 매일매일이 기대도 된다. 달리며 웃고 걸으며 즐겁다. 빨리 뛰어도 그 결승점이고 천천히 걸어도 같은 결승점. 달리며 깨우치는 단순한 이 생각에 스스로 흥겹다. 즐겁게 살자, 행복하게 지내자 마라톤이 가르친다.

반환점을 돌아 결승점으로 향한다. 오던 길 익숙한 풍경이라 자칫 무리할 지도 모른다. 왔던 길 다시 달려도 우습게 보지는 말 것. 돌아가는 길은 오던 길과 또 다른 다짐으로 나서야 한다. 길은 같아도 나는 다르다. 숨이 가쁘고 몸이 지친다. 마음도 새롭게 보폭도 신중하게 다시 긴장하며 다시 다짐하며 돌아가는 저 길을 상상해 본다. 다 아는 것 같아도 아직도 모른다. 나이가 들었어도 삶에는 언제나 낯선 가닥이 가득하다. 방심은 금물, 느슨하지 말 일이다.

드디어 결승점. 모두가 행복하다. 다 달려왔구나. 수고들 했구나. 돌아보는 굽이굽이가 새삼 정겹고 함께 도착한 사람들이 참으로 대견하다. 각자의 삶에서 그렇게 승리하시라. 오늘처럼 행복하게 달려가시라. 함께 달려 즐거웠고 같이 견주어 행복했습니다. 내일부터 사는 일은 마라톤의 기억처럼 해내야 한다. 건강하게, 즐겁게, 그래서 행복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