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 살며 생각하며 ⑻

외국이라고 처음 가본 것이 1996년 가을이었다. 배 타고 황해 바다 건너 텐진으로 들어갔다. 1박 2일 끝에 뭍에 상륙, 한밤에 마이크로 버스로 베이징 중국 교포 민박집으로 들어갔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웠다. 벽이며 문이며 화장실이 이럴 수 있을까 싶었다. 밤늦게 식사라고 나왔지만 밥도 콩나물도 냄새가 나서 먹을 수가 없었다.

며칠 후 내몽고 수도인 후허하오터[呼和浩特]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 역 앞에서 `旅店`(여점)이라는 피켓을 든 사람들이 수십 명씩 승객들을 맞이하려 안감힘을 썼다. 그때 중국은 호텔 아니면 외국인은 잘 수 없던 시절, 그래도 그중 한 사람을 따라 집단주택 중 하나에 들어갔다. 화덕 있는 곳 옆의 침상에서 혼자 자면 15위안, 그때 한국 돈으로 1천500원, 미닫이문 안 침상 서너 개 중 하나에 자면 10위안이라 했다. 역시 발을 뻗고 잘 수 없는 시설이었다. 입은 옷 그대로 침상에 들어 발을 웅크리고 겨우 서너 시간 눈을 붙였다.

지금은 중국도 달라졌다. 어딜 가나 별 몇 개짜리 호텔들이다. 시설도 월등히 좋고 규모는 말할 것도 없다. 한국 같은 작은 나라 사람은 눈이 커질 정도로 호화로운 곳도 많다. 하지만 세심하게 따지면 아직 멀었다고 할 수 있다. 비누나 샴푸, 수건 같은 세면 도구, 욕조나 샤워 시설 같은 데서 불만족스러운 게 여전히 남아 있다.

중국 얘기는 이 정도에서 그만, 사실은 이 나라 여행 시설 얘기를 하고 싶다. 그 핵심에는 숙박 문제가 있다.

호텔, 모텔, 여인숙, 펜션, 민박. 자유 국가답게 다종다양한 시설들이 여행객들을 맞이한다. 시설도 외관상 좋아 보이는 곳도 아주 많다. 얼마 전 평창 세계 작가 대회로 어떤 리조트에 묵었는데 나쁘지 않았고 쾌적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다 그렇지는 않다. 여행을 좋아하고 타지로 떠도는 일이 많다. 그때그때 되는 대로 머무르다 보면 생각되는 게 많다. 무엇보다 더 깨끗해져야 하겠다는 것이다.

내 집 아니라 여행객들의 공간이다. 서로다른 사람들이 수없이 오가는 곳이다. 누군지 모르는 남의 몸이 머물렀다 가는 곳인 것이다. 어떤 수준의 시설이든 단 두 가지 갖춰져야 할 게 있으니, 하나는 청소 상태요, 둘은 침구의 교환이다. 펜션에 얼마나 멋진 장식과 화려한 비품이 들어 있는가가 관건일까?

전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깨끗한 곳에 몸을 눕히고 있다는 안도감이 중요할 것이다. 만약 이불 따위를 갈 수 없다면 커버, 시트는 반드시 교환되어야 하고, 타인들의 머리카락이 그대로 떨어져 있는 식은 정말 곤란하다.

호텔, 모텔, 여인숙, 펜션, 민박. 이런 유형과 등급은 제각기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아무리 좁고 허름해도, 안심하고 들어가 등을 붙일 수 있어야 한다.

처음 일본의 체인 호텔 도요코인에 들었던 때가 생각난다. 일본은 위생병 환자들의 나라인 것은 맞다. 그러나 문제가 간단치만은 않다. 이 나라는 아직도 중국에 가까운 것이다. 달라질 것이다, 달라져야 한다. 바닷가 펜션에 머무르는 이 한밤의 생각이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