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몽골 ①

▲ 몽골 소년들은 말을 잘 다룬다. 여행자들에게 놀라운 기마술을 보여준 꼬마.
▲ 몽골 소년들은 말을 잘 다룬다. 여행자들에게 놀라운 기마술을 보여준 꼬마.

열 살이나 됐을까? 조그만 꼬마가 말을 다루는 솜씨가 놀라웠다.

초원 위에서 펼쳐지는 `아슬아슬한 서커스`라고 해도 좋을 듯했다. 동행한 몽골의 안내원이 “이곳에선 저 정도는 놀라운 게 아닙니다. 대부분의 애들이 말을 아주 잘 타요”라며 껄껄 웃었다.

몽골의 하늘은 광활한 초원의 색깔을 닮았고, 몽골의 초원은 드넓은 하늘과 유사한 빛깔이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초원인지 그 경계가 흐려진다. 먼지 한 점 보이지 않는 청아한 날. 몽골의 풍경은 원시적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자신을 지켜보는 여행자들의 박수와 환호에 신이 났는지 말 위의 소년은 갈수록 고난도의 기술을 보여준다. 맞다. 저 아이는 몽골인이다. 혈관 속으로 칭기즈칸과 쿠빌라이칸의 피가 흐르는.

독일에서 온 관광객의 팔에 올라앉아 매섭게 눈을 빛내던 독수리도 소년의 승마를 잠자코 지켜본다. 기자는 `어린 칭기즈칸`을 만난 기분이었다.

몽골이 아시아에서 시작해 유럽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을 때 원나라의 기병(騎兵)들은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큰 덩치를 가진 유럽의 병사들이 긴 창을 휘둘러 몽골의 기병들을 제압하려 애썼지만, 말의 등과 배, 양 옆구리에 자유자재로 매달려 화살을 쏘아대는 신묘한(?) 기마술을 당할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지금 말에 오른 꼬마의 실력을 보니 당시 몽골 기병들의 말 다루는 기술이 어느 정도였을지 미루어 짐작됐다.

거대한 제국을 호령했던 칭기즈칸은 유언까지 호방담대(豪放膽大) 했다. 죽음을 눈앞에 둔 황제는 “나는 천 년 후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있을 것이다. 왕들 위에 군림한 진짜 왕으로”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 초원으로 쏟아지는 햇살과 만나는 여행

몽골을 떠올릴 때면 칭기즈칸, 기병과 함께 광대한 초원으로 쏟아지던 빛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어느 세상 봄볕이 그처럼 환하고 따스할 수 있을까. 상상을 뛰어넘는 추위로 인해 겨울엔 몽골을 찾는 관광객이 드물다. 하지만 반짝하는 짧은 봄과 여름엔 여행자들이 넘쳐난다.

4시간 가까운 비행 끝에 도착한 울란바토르(Ulan Bator) 국제공항. 한국인과 너무나 닮은 몽골인의 모습에 놀랐다. 말을 하지 않으면 누가 한국 사람이고 몽골 사람인지 구분이 힘들 정도였다.

그리고 다음 날. 마주한 초원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보며 다시 한 번 놀랐다. 깨끗하고 소박한 풍광.

가슴 속 지저분한 욕망이 조용히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희망과 꿈의 은유인 `봄`을 노래한 이성부(1942~2012)의 시가 귓전을 울렸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유유자적 세상을 떠도는 여행자에게 `다급한 사연`이 있을 까닭이 없다. 그저 `지금 이곳`을 즐기면 될 뿐.

하지만 이성부의 시는 그런 여행자까지도 `두 팔을 벌려` 무언가를 기다리게 하는 드문 체험을 제공한다.

조금 이상한 표현이 될 수도 있겠지만, 몽골의 초원 풍경은 어떤 간절한 기다림이 마침내 해소된 듯한 느낌을 준다.

사실 인간이란 매일 무언가를 `기다리는 존재`가 아닌가.
 

▲ 푸른 보석 같은 하늘 아래 몽골식 이동 천막 게르가 보인다.
▲ 푸른 보석 같은 하늘 아래 몽골식 이동 천막 게르가 보인다.

▲`칭기즈칸 보드카`에 취한 흥겨운 밤

몽골로 떠난 여행은 여러 명의 시인과 소설가, 출판사 관계자들이 함께 했다. 한 차례의 세미나와 몽골 문인들과 함께 진행한 공식행사 몇 건이 있었으나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자와 동행자들은 대부분의 여유 시간을 울란바토르 시내를 배회하거나, 차를 타고 도시 외곽으로 나가 초원을 서성이며 보냈다.

호기심 많은 이들은 수흐바토르 광장에서 몽골 역사에 관한 책을 읽거나, 자연사박물관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모처럼의 여행에서 학구열을 보여주는 이들은 적었다. 게다가 문인들은 너나없이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양고기를 안주 삼아 보드카를 마셨다.

몽골 사람들의 술 실력은 러시아인 못지않았다. 아마도 겨울이 길고 추운 탓일 것이다.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우리 일행과 함께 다닌 몽골의 문인들은 식사 때마다 보드카를 가져와 거푸 권했다. 보드카 병에는 칭기즈칸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냉혹하면서도 엄정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보드카는 알코올 함량이 40%를 넘는 독주다. 향과 색이 없기에 과일주스나 탄산음료를 섞어 칵테일로 마시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데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몽골인들은 그걸 생수처럼 벌컥벌컥 들이켰다. 보는 사람이 기가 질릴 정도였다.

하지만 한 잔, 두 잔 마시다보니 기자 역시 몽골에서 생산된 칭기즈칸 보드카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러시아 보드카 `벨루가`가 부럽지 않았다.

티끌 한 점 없는 몽골의 밤하늘에선 커다란 별들이 휘황하게 반짝였고, 이동식 천막인 게르에선 전통방식으로 요리하는 양고기가 먹음직스럽게 익어갔다. 거기에 보드카가 선물한 취흥까지 도도했으니 즐겁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흥겨웠던 밤으로 돌아가고 싶다.

 

몽골은…

수도는 울란바토르
공용어는 몽골어지만
영어소통 가능 청년도 많아
과묵하고 진중한 성격이나
외부인에게 따뜻하고 친절

아시아 중앙에 위치한 내륙 국가다.

몽골이라는 나라에 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13세기 초 아시아에서 유럽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Chingiz Khan)`이란 이름은 익숙할 것이다.

거대한 땅을 지배했던 몽골제국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동서양 여러 국가에 미친 사회·문화적 영향력은 상당했다. 제국이 사라진 후엔 남아있던 영토가 1688년 청나라에 복속됐다.

독립은 1921년에 이뤄졌고, 이는 러시아의 `10월 혁명`에 힘입어서였다.

면적은 156만4천116㎢이며 수도는 울란바토르. 국민의 대부분은 몽골족(95%)이고, 소수의 투르크족 등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공용어는 몽골어. 하지만, 울란바토르엔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종교는 라마교(90%)가 주류고 이슬람교(5%)를 믿는 이들이 일부 있다

정치적으론 공화제를 택하고 있으며, 사용되는 화폐의 단위는 투그릭(Tugrik)이다.

▲ 사냥에 사용됐다는 몽골의 독수리.
▲ 사냥에 사용됐다는 몽골의 독수리.

100투그릭은 한국 돈 약 45원. 인구는 320만 명인데 그중 절반 가까이가 수도에 거주한다.

평균 수명은 67세.

북서쪽으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오래 전부터 러시아의 영향을 받았고 러시아와 몽골의 혼혈인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남동쪽에는 중국이 자리한다. 인구는 적고 국토는 넓다. 그렇기에 개발 가능성이 곳곳에 존재한다.

옛 소련연방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공산주의 국가가 됐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경제난 해결과 자본주의 국가들의 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서방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있다. 국제기구 가입과 개방외교,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도입도 동시에 추진했다.

몽골의 남성들은 과묵하고 행동이 진중하다. 그러나 외부인을 따스하게 맞이하는 유목민 특유의 친절함도 지녔다.

몽골에선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는 체험과 드라마틱한 트래킹을 즐길 수 있다. 모험심 가득한 여행자라면 몽골 사람들의 이동식 텐트인 `게르`에서 자보기를 권한다. 분명 드물고 유쾌한 경험이 될 것이다.

▲ 잘 그려진 한 폭의 풍경화를 떠오르게 하는 몽골의 야트막한 산과 들.
▲ 잘 그려진 한 폭의 풍경화를 떠오르게 하는 몽골의 야트막한 산과 들.

`고원국가`이기도 한 몽골은 국토 전체의 해발 고도가 1천600m에 이른다. 지형은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다. 남부의 땅 중 30% 가량은 고비사막(Gobbi Desert)이다. 유목민들은 이 척박한 땅에서도 양과 낙타 등을 기르며 생활한다.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를 나타내는 몽골은 혹한으로도 유명하다. 여름은 습기가 적어 무더위가 덜하지만 겨울 추위는 가혹할 정도다.

울란바토르의 1월 기온은 영하 30도 이하로도 내려간다. 한국의 봄 날씨와 비슷한 6~8월이 관광 성수기. 많은 수의 외국인들이 이 기간에 몽골을 찾는다.

글/홍성식기자
사진제공/구창웅

    홍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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