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개화<br /><br />단국대 교수
▲ 배개화 단국대 교수

올해 초부터 소위 `미투 운동`, 즉 권력형 성폭력(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등)에 대한 여성들의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각 언론에서도 성폭력에 대해 고발하는 여성들의 기사를 연일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미투 운동이 한국의 성 평등 의식을 높이고 남성과 여성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드는 쪽으로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요즘 언론에서 미투와 더불어 새롭게 떠오르는 키워드는 `펜스 룰`이다. 이것은 미국의 펜스 부통령이 자신은 아내 외의 여자와는 일대일로 만나 식사나 대화를 하지도 않는다고 한 것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투 운동이 일어나면서 남자 상사가 여자 직원에게 업무 지시를 메신저로 하고, 부서의 회식이나 회의에서 여자 직원을 배제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굳이 언론 보도가 아니더라도, 미투 운동 초기부터 필자는 주위의 여성들로부터도 여러 차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어제만 해도 필자의 수업을 듣는 대학원생이, 남편이 로펌에 다니는데 요즘 회식 자리에 여성을 부르지 않는다며 다들 여성들과 거리를 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회사는, 대학원생의 말에 따르면, 사내 성폭력 문제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런 반응은 애초에 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음으로써 `성폭력` 논란이 일어나는 것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 속에는 매우 왜곡된 의식이 작동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조치에는 마치 성폭력의 책임이 가해자인 남성이 아니라 피해자인 여성에게 있다는 생각이 담겨있다. 마치 여성 자체가 성폭력 유발자라는 식의 사고 말이다. 미투 운동의 핵심은 남성이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자기보다 힘이 없는 여성, 주로는 부하 직원이나 학생 등을 성적 도구로 삼지 말아달라고 사회적으로 호소하는 것이다. 이 운동은 다수인 남성들의 묵인과 방관 하에서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이제는 좀 그만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성들에 대한 성차별적 의식에서 나온 불법 행위를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차별 의식을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현재 한국사회 남성들의 성차별적 의식은 식민지 시대의 남성들의 의식에 비교해서 크게 개선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최근 필자는 수업에서 학생들과 김동인의 `마음이 옅은 자여`와 염상섭의 `제야`를 읽은 적이 있다. 소위 `고백체 소설`(자기의 잘못을 편지를 통해 고백하는 소설)의 예로 읽은 것이다. `마음이 옅은 자여`에서 기혼인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불륜을 친구에서 편지로 고백하고, 이후 친구와 금강산으로 여행을 간다. 반면에 `제야`에서는 기혼 여성이 자기 남편에게 두 남성과의 불륜 사실을 편지로 고백하고 자살한다. 이런 대조적인 결론에는 성 관련 문제에서 남성에게 관대한 남성 우월적인 사고가 반영되어 있다.

최근 미투 운동에 대한 사회적 반응도 젠더 문제와 관련해서 남성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여성에 대해서는 쉽게 용서하지 않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회사 내에서 남성 동료들이 집단적으로 `펜스 룰`을 적용해 여성동료를 따돌림 하는 것도 그 하나이고, 미투 운동을 통해서 자신이 성폭력을 당한 경험을 고백한 여성들을 `꽃뱀`으로 모는 시선(악용이 의심되는 정황도 없지 않아 있다)도 그 하나이다.

미투 운동은 젠더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의 조직 문화까지도 바꿔야 할 필요를 보여준다. 펜스룰 때문에 여성들이 회식에서 배제되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업무와 관련 없는 회식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직장 동료들은, 서로 사귀는 사이가 아닌 이상, 업무가 아닌 일로 일대일로 만나지 않고 만남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서로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