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 살며 생각하며 ⑤

한밤에 잠도 잘 오지 않고 해야 할 일은 쌓였는데 손도 잡히지 않아 이것저것 생각에 잠겨 본다.

방도 좁고, 어둡고, 사위 고요한데 내가 지금 어디 와 섰나, 무엇을 하고 있나 한다. 열정적으로들 사는 한가운데 춥고 스산한 기운 속에 잠겨 있는 것 같다.

많이 아픈 사람에게 낮에 전화를 해봤지만 신호는 몇번 가지도 못하고 끊겼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신호인 것 같아 마음이 영 놓이지 않았다.

요즘 주변에는 아픈 사람이 하나 더 있다.

“위로 대신 공감이야.”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위로라는 또다른 `가르침`보다 그냥 함께 감각한다, 느낀다는 의미에서의 공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언뜻 들으니 정월 대보름이란다. 음력으로 따지니 겨울은 겨울이다.

그래도 삼월인데.

봄도 삼월 봄은 따뜻하지 않고 춥다. 겨울도 이월 겨울은 춥지 않고 따뜻한 것과 같다.

이제 따뜻하려니 하는 섣부른 기대에 얇은 옷 걸치고 나섰다가는 큰코 다치기 쉽다. 바람도 겨울바람보다 끝이 날카로워 살갗 속 뼈속으로 깊이 스며든다.

춘한.

봄추위라고 말해야 할까. 나는 봄추위라는 말대신 춘한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훨씬 더 은근하고도 깊은 맛이 난다.

아침 적당한 때 일어나 외출 준비를 했다. 창밖으로 날이 화창해서 아무런 고생도 없을 것 같았다. 점퍼에 청바지나 입고 얇은 목도리만 걸치고 길을 나섰다.

바람이 맵찼다. 예상 밖으로 날카로운 바람에 찔리며 서둘러 걸었다. 이제 봄은 왔고, 오늘은 삼일절, 내일부터는 새로운 날이 그래도 시작될 것이다.

애써 좋은 생각을 하며 목적지에 당도했다. 이제 오늘의 일을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작업장`이 너무 차다. 마치 겨우내 묵혀두고 불 한번 안 때운 온돌방처럼 사면 벽에서 냉기가 세다.

너무 오래 비워둔 것 같은 `작업장`은 그러나 어제도 와 있었고 그저께도 들렀다. 그럼에도 이렇게 공기가 차갑게 느껴짐은 마음이 이곳을 오래 비웠음인가.

책장을 열어본다.

`돈황의 사랑`이라는 윤후명 작가 소설이다.

“달밤이다. 먼 달빛의 사막으로 사자 한 마리가 가고 있다. 무거운 몸뚱어리를 이끌고 사구를 묵묵히 오르내린다.”

무엇을 할 것인가.

자신이 고독하다고 느껴지는 지독한 춘한 속에서 나는 생각한다. 견디고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추위에 지쳐 쓰러질 때까지는. 다행히 봄은 올 것이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